[글로벌 넘버원 도전]<2>일렉포일 강자 `일진머티리얼즈`…전기차 시장 패권 도전

[글로벌 넘버원 도전]<2>일렉포일 강자 `일진머티리얼즈`…전기차 시장 패권 도전

일진머티리얼즈는 세계 이차전지용 일렉포일 시장 1위 기업이다. 일렉포일 원조격인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넘버원 자리에 올랐다. 전기차 시대 패권을 노린다.

일렉포일은 낯선 용어지만 이차전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얇은 구리박인 일렉포일은 전지에서 음극을 형성해주는 집전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양극과 음극 없이는 배터리가 존재할 수 없다. 여러 번 충전해서 사용하는 이차전지가 증가할수록 일렉포일 수요도 그 만큼 더 늘어난다.

◇일진의 일렉포일 도전기

일진머티리얼즈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제공: 일진)
일진머티리얼즈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제공: 일진)

일렉포일은 구리를 얇게 만들기 때문에 겉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품(블랙아트)`으로 불릴 정도로 제조가 까다롭다.

모기 한 마리가 수백m 불량을 일으킬 만큼 극한의 청정도를 유지해야 하고, 온도·습도 유지가 필수다. 전기가 멈추면 동일한 품질 제품 생산이 불가능해 전력까지 완벽히 뒷받침돼야 한다. 기간산업이 우수한 선진국만 보유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였다.

일진이 이런 일렉포일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수많은 실패와 도전이 있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모든 전자제품에 일렉포일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국산화를 다짐했다. 이에 1978년 서울대와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 일본 한 업체를 찾았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보안 때문에 공장을 마치 감옥처럼 높은 울타리로 친 일본 회사는 `이런 기술은 꿈도 꾸지 마라`고 했다.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고, 1987년 일렉포일을 만들어냈다. 이듬해인 1988년 국내 최초로 양산을 시작하고, 1993년에는 제2공장도 가동했다.

하지만 제품 불량 문제가 불거졌다. 공장 운영에도 적자가 이어졌다. 1997년 승부수를 던졌다. 3000억원을 투자해 3공장을 짓기로 했다.

개발진에 대한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다. 일진은 서울대와 공동연구를 시작한 이후 1997년까지 2만회 이상 실험을 거듭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1만5000회 실험한 것과 비교될 만큼 도전정신이 치열했다.

연구개발 착수 20년째인 1997년 10월 마침내 불량 문제가 완전히 해소됐다. 국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었고, 일부 구매처에서는 일진에 감사하다며 접대하는 일도 벌어졌다.

◇PCB·스마트폰 넘어, 전기자동차로

일진의 일렉포일은 인쇄회로기판(PCB)부터 쓰였다. 전자제품 내부 기판과 부품 사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일을 일렉포일이 했다. 인체 혈관과 같은 역할이다.

모든 전자제품의 필수 소재다 보니 국내 전자산업 발전과 함께 일진의 일렉포일 실적도 늘었다.

이차전지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일본이 주도하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일진은 2001년 7월부터 특수일렉포일을 개발, 생산했다.

이후 2004년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갔는데, 국내 휴대폰 산업과 동시에 중소형 이차전지 산업도 발전하면서 일진이 이차전지용 일렉포일 시장에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진머티리얼즈 관계자는 “2010년을 전후해 생산능력 기준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랐다”고 전했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최근 다시 주목 받는 이유는 전기자동차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는 휴대폰처럼 여러 번 충전해 다시 쓰는 이차전지를 동력으로 쓴다.

같은 이차전지지만 용량이 소형 전지 대비 수 백배, 심지어는 수 천배에 달한다. 전기차용 이차전지 증가에 따라 일렉포일 수요가 급증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스마트폰 1대에 들어가는 일렉포일은 3g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기차에는 15kg이 사용된다. 스마트폰 일렉포일 5000대분이 전기차 1대에 들어간다.

이 같은 시장 변화에 일진은 전기자동차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용 생산라인을 이차전지용으로 전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 수요 확대를 대비하고 있다.

PCB서부터 시작해 이차전지용 이차전지까지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일진의 일렉포일은 전기자동차 시장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중국과 북미 메이저 전기차 회사들이 일진의 일렉포일을 속속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확대에 따라 일렉포일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후발주자의 거센 도전을 받을 가능성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전기차에서도 일렉포일 패권을 잡게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제공: 일진)
일진머티리얼즈의 이차전지용 일렉포일(제공: 일진)

○1978년 일진부설연구소와 서울대 생산기술연구소 일렉포일 공동 연구개발 착수

○1987년 `덕산금속` 설립

○1988년 국내 최초 일렉포일 생산 출하

○1996년 `일진소재산업`으로 상호 변경

○1997년 제3공장 가동 개시, 5000만달러 수출의 탑 수상

○1999년 20세기 한국 100대 기술 선정(과학기술부)

○2001년 1억달러 수출의 탑 수장

○2001년 리튬이차전지용 일렉포일 생산 개시

○2008년 2억달러 수출의 탑 수상

○2010년 `일진머티리얼즈`로 사명 변경

○2011년 월드클래스300 대상기업 선정(지식경제부)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