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SW개발자로서의 삶…`왜 개발자를 하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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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면서 적당히 칼퇴근하고 싶어서 우리 회사에 지원한 것 아닌가요? 꿈이 있긴 해요? 여성 최초 임원 한 번 해보고 싶으면 임원 자리 하나 파드릴까요?”

지난 15일 서울 충무로 한 극장에서 여성 개발자 현실을 다룬 다큐 관람 후 토론자로 참석한 여성 개발자 A씨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충무로 한 극장에서 여성 개발자 현실을 다룬 다큐 관람 후 토론자로 참석한 여성 개발자 A씨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지난 15일 서울 충무로 한 극장에서 여성 개발자 현실을 다룬 다큐 관람 후 토론자로 참석한 여성 개발자가 들려준 실화다. 6년차 개발자인 그녀가 최근 모 게임사 개발 경력직 면접에서 면접자에게 들은 내용이다.

“출산 거의 마지막달까지도 새벽까지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했다. 출산 후 바로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 경력직을 알아봤지만 면접장에서 나온 질문 대부분 이와 다르지 않다. 담당했던 프로젝트 성과나 기술 관련 질문보다는 80% 이상이 육아문제였다. 남편 직업이나 연봉이 얼마이기에 개발자를 굳이 다시하려 하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는 여성개발자로서 한국사회에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했다.

“권고사직 전 다녔던 기업 팀장이 어느 날 `IT개발자 말고 경리해. 여자들만 잘하는 분야도 많은데 왜 개발자를 하려고 하니?`라고 물었다. 지금까지 대학다니고 회사 다니면서 공부한건 뭐고 이 프로젝트는 왜하는지 반문하고 싶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 개발자 일을 너무 사랑한다. 주변에서 힘드니까 포기하라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끝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육아도 병행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성평등을 코딩하라` 속 이미지.
<다큐멘터리 `성평등을 코딩하라` 속 이미지.>

SW 개발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여성 개발자 문제가 심각하다. 이날 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제10회여성인권영화제`에 출품된 다큐멘터리 `성평등을 코딩하라`는 미국 여성 개발자 현주소를 전달했다.

미국 대표 IT 업체 개발자 남성과 여성 비율(100기준)은 애플이 80:20, 트위터는 90:10, 구글은 83:17, 페이스북은 85:15 수준이다.

핀터레스트, 에어비앤비, 깃허브(오픈소스 공유 사이트), 피보탈 등 IT 주요 업체 여성 개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직 내 남성중심 문화와 여성 개발자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차이는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진보를 위한 코딩(여성과 유색인종)`, `코딩하는 흑인 여성들`, `여성과 IT센터`, `코딩하는 소녀들` 등 여성 개발자 관련 단체가 활발히 움직인다. 이들은 현업 여성개발자뿐 아니라 차세대 여성 개발자 육성에도 앞장선다. 여성이 어릴 때부터 SW에 자신감을 가져야함을 강조한다. 세계 최초 프로그래머가 여성(에이다 러브레이스)이었고, 컴퓨터 진공관에 나방이 날아든 것을 보고 `버그`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이도 여성(그레이스 호퍼 전 미 해군 대령)이다. 1960년대 미국에선 `컴퓨터걸스` 라는 표현이 등장 할 만큼 여성 프로그래머가 자리 잡았다.

픽사에서 17년간 근무한 여성 개발자는 “컴퓨터 분야에서 많은 여성이 선구자였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남성중심적 SW개발 조직문화와 고정관념이 없어져야한다.”고 말했다.

킴벌리 브라이언트 코딩하는 흑인여성들 CEO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여학생을 모아놓고 SW개발자 대회를 진행하면서 여학생들 자신감을 높여주려 한다”면서 “여학생들도 개발자로서 충분히 성장가능성 있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스스로 느끼면서 변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여학생들을 위한 코딩 캠프에 참여한 한 학생은 “SW개발은 남자 영역이고 여자는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더 잘한다고 미리 생각하고 여학생을 바라보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SW개발자가 꿈이다. `지금보다 50배 이상 실력을 키우자`라고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영화관에는 여성 개발자 또는 이에 관심 있는 이들 40여명이 다큐 관람 후 자리를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여성개발자로서 경험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막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대학교 1학년생은 남학생과 실력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30대 중후반 늦은 나이에 SW개발자로 진로를 바꾼 이는 여성 SW개발자로서 미래 불안함을 이야기했다.

관객과 대화에 참여한 개발자는 마지막 발언에 여성개발자로서 많은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딩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강점을 지녔다”면서 “여성이 코딩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도 코딩을 한다는)무기를 하나 손에 쥐었다고 본다”면서 “그래서 더 공부해야한다. 최신 트렌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