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 <134>우리의 국가적 재난 관리 시스템은 무엇인가

[이강태의 IT경영 한수] <134>우리의 국가적 재난 관리 시스템은 무엇인가

정보 유출, 안전사고, 정전, 지진, 홍수, 가뭄, 폭설, 태풍, 원자력발전 중단과 같은 각종 사건·사고는 우리의 일상이다. 신문과 방송에 각종 사건, 사고, 재난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고 살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얘기하지는 못한다. 이런 사건, 사고, 자연재해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전쟁이라는 것이 언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발생할 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니 사건, 사고, 재난, 전쟁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경주에서 지진이 나고 난 뒤 언론들이 일본의 재난 대책을 자주 벤치마킹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는 재난 발생 후 대피할 장소와 대피한 주민들이 사용할 식수, 식량, 의약품을 깔끔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공무원들도 재난 대비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었고, 각종 안내판도 완비돼 있었다.

필자가 일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 받으러 구청에 가면 외국인에게도 재난 대비용 박스를 하나씩 주었다. 내용물은 랜턴, 라디오, 건빵, 붕대, 반창고, 가위, 소독약, 식수 정수제 등인 것으로 기억난다. 이것도 정확히 1년이 되면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새로운 박스로 교체해 주었다. 또 전 주민이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디에 모여야 하는지가 표시된 지도도 나눠 주고, 실제로 동네 공원에 모이는 훈련도 했다.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모든 것이 집중돼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재난이 발생한다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의 국가적 재난에 대해 우리 개인, 가정, 지방자치단체, 정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그러한 재난 시스템을 국민들이 정확히 알고 있는가. 그러한 재난 시스템을 실행할 공무원들은 잘 훈련돼 있는가. 지금 아이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수라장이 우리나라에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사재기를 몹시 두려워한다. 사회 전체가 집단적 공포에 빠지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 재해가 예상되거나 북한의 도발이 있었을 때 사재기 여부에 따라 민심의 동요를 측정하곤 한다. 사재기가 없었으면 성숙된 시민정신의 발로라고 한다.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될 조짐이 있는 데도 스스로 대비하고 준비하지 않는 것이 정말 성숙된 시민정신일까? 오히려 자기 재난 물품은 자기가 직접 준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래서 정부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부 국민만을 돕도록 하는 것이 더 성숙된 사회 아닌가?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삼성 겔노트7 단종, 한진해운 사태, 노조 파업, 각종 정치적 스캔들로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어지럽다고 해도 확실한 미래 청사진이 있으면 참고 견딜 수 있는데 그것조차 없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책임 있게 얘기하는 관료도 없다. 한마디로 국가 운영 시스템이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다면 누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서 사태를 수습할지 정말 걱정된다.

지금도 자연 재해나 큰 사건·사고 나면 재벌들이 성금 내고 군인, 공무원,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복구 작업에 나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제한된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에 대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겠지만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적 규모의 체계적인 구난시스템이 작동할 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국가 차원에서 계획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그 계획을 잘 모르고 있고, 훈련해 보지 않았다면 그러한 대책들이 급할 때 잘 작동될 리 없다.

아무 대비도 없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지내는 것을 성숙된 시민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설마 하면서 그냥 사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는 그러면 안 된다. 국가 재난을 단계별로 규정하고, 그 단계에 따른 국민들의 행동 요령을 확실하게 밝히고, 평소에도 훈련해야 한다. 각종 재난 물품을 비축하고 국제적인 보험에도 가입해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예전의 재난에 비해 강도 센 놈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다. 지진이 난 뒤 몇 초 만에 안내 메시지가 나갔냐고 따지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지진이 발생한 뒤의 재난구호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재난은 예측할 뿐이지 발생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재난 발생 후의 대책이 재난 예측이나 예보 시스템보다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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