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장내 미생물 은행 첫 구축,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본격화

기업 연구진이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고 있다.(쎌바이오텍 제공)
기업 연구진이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고 있다.(쎌바이오텍 제공)

처음으로 한국인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유전정보) 연구를 위한 `장내 미생물 은행`이 구축된다. 국가차원에서 `제2 게놈`으로 주목받는 장내 미생물 자원 확보에 나서면서, 한국인에 최적화된 미생물 연구와 신약·치료법 개발이 속도를 낸다.

28일 정부 기관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올 연말부터 2023년까지 총 80억원을 투입해 한국인 장내 미생물 뱅크 구축과 활용 촉진사업을 진행한다. 건강한 한국인 장내 미생물을 확보해 유전정보를 분석한다. 신약, 건강기능식품, 관리 프로그램 등 개발을 위해 기업, 연구소에 분양할 계획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 몸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유전정보다. 장내, 표피, 구강, 기관지, 생식기 등 각 기관에 분포한다. 미생물은 생체대사조절과 소화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역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거나, 건강한 미생물을 이식해 면역력을 높인다. 최근에는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등 각종 대사·면역질환과 심장병, 우울증, 자폐증, 치매까지 몸속 미생물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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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미생물은 많지만 수집·분석은 어렵다. 게놈에 비해 100배가량 많고, 장내에만 2㎏에 가까운 미생물이 산다. 하지만 대부분 공기에 노출되면 죽는 `절대혐기성 세균`이다. 분리 배양 기술 노하우는 물론 비용을 투입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미생물 유전정보를 분석할 ICT장비, 인력도 필요하다.

2023년까지 8년간 이뤄지는 이번 프로젝트는 장내 절대혐기성 미생물을 특정해 한국인 미생물을 수집·분석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주관이 돼 분당서울대병원, 천랩이 참여한다. 생명공학연구원은 뱅크 구축과 운영·관리를, 분당서울대병원은 일반인으로부터 확보한 분변과 임상정보를 취합해 공급한다. 천랩은 미생물 유전정보 분석 기술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

수집 규모는 건강한 한국인 800명 이상이다. 10대부터 60세 이상 노년층까지 전 세대를 대상으로 생애 주기별 장내미생물을 확보한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 몸 90%가 변화시킬 수 있는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다”면서 “수집, 배양에 어려웠던 장내 미생물을 확보하고,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활용하도록 분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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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 뱅크가 구축되면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속도를 낼 수 있다. 생체대사 조절, 대사·면역질환, 신경·정신계 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미생물이 영향을 끼친다. 국내에서도 미생물을 건강하게 만드는 식품, 미용제품은 물론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개발까지 시도된다. 연구에 가장 큰 걸림돌이던 한국인 장내 미생물 확보가 해결되면서, 연구과정에서도 원활하게 실물자원을 확보한다. 미국, 중국, 유럽 등 국가차원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집중하는 나라와 경쟁도 가능하다.

이정숙 생명공학연구원 책임 연구원은 “한국인 장내 미생물에 대한 기본 자료는 일부 있지만, 인분에서 채집한 실물자원은 거의 없었다”면서 “마이크로바이옴 뱅크가 구축돼 실물자원을 확보하면, 이를 활용해 한국인 주요 질환과 연관성을 분석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제시하는 연구가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