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 산업혁명과 사람을 바라보는 여유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우리는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기술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컴퓨터가 개발되고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 왔지만 많은 사람이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러나 얼마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앞으로 다가올 기술혁명 시대를 이전과 다른 충격 방식으로 제시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기술 발전, 그리고 이세돌의 패배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기술 용어들과 함께 우리 일상 속으로 다가와 있다. 이는 혁명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 그동안 1~3차에 걸쳐 진행된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이전과 이후가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공통으로 나온다.

우선 우리의 일상이 확연히 변화할 것이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이 인간 간의 소통을 극대화한 것이라면 앞으로는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 소통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데이터화돼 저장 및 분석되고, 이를 통한 학습과 지능화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 환경도 재편될 것으로 예견된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이미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자동차가 출시되고 있으며, 조만간 대세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제조업의 경우 이미 많은 부분이 사람의 노동력이 아닌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 의료 영역도 동일한 패턴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산업 변화는 우리 일자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 초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 보고서의 주요 이슈는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15개 국가에서 716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는 202만개 생겨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전체로는 5년 동안 514만개, 해마다 평균 103만개 일자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러한 일자리 변화에 따라 교육도 변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하나둘 소멸돼 가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 각광받게 될 것이다.

의료 분야를 보자. 의사라는 직업은 이미 고대 때부터 현재까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문가의 고유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닐 수도 있다. 의사의 역할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현재 의사의 역할 가운데 하나인 전문지식 전달자로서의 기능은 미래학자들이 얘기하듯 종언을 고할지도 모른다. 수없이 생산되는 현대 의료 지식을 분석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있어 사람보다는 AI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견해들은 의료 기술 행위만을 중시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현대 사회로 오면서 잊고 있던 의료의 또 다른 한 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됐다. 의료는 기술 측면과 더불어 의사와 환자 간 감정 교류 및 소통이라는 인문학 측면이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원하는 것은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공감과 위로도 포함돼 있다. 현대 의료가 과학과 기술 성취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동안 뒤편으로 미뤄 놓은 또 다른 의료의 본질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의사들에게 이제 그동안 소홀히 해 온 `사람 중심 의료`에 더욱 집중하자고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점점 눈앞에서 현실화돼 가면서 의료 분야에서도 빅데이터, AI,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분야의 융합 연구개발(R&D) 필요성도 높아 가고 있다. 당연히 중요한 얘기이고, R&D자로서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제 심호흡도 한번 하자. 기술 입장이 아닌 사람 입장, 인간 존엄성 입장에서 기술을 바라보는 여유를 잠시나마 가졌으면 한다.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hjlee@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