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산업 정책, 판을 바꾸자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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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크고 튼실한 기둥은 바로 `산업(産業)`이다. 변변한 천연자원 없이 대한민국이 세계 7위 수출국으로 글로벌시장을 호령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제조업이란 튼튼한 산업뿌리에서 나왔다. 정부가 `산업 입국(立國)`을 기치로 40년 이상 일관된 지원 정책을 펴온 것도 주효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최근 산업 구조 변화는 `산업정책`의 정의와 입안부터 실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기존 틀을 완전히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장기적이고 확고한 산업정책이 수출, 통상 등까지 스며들 수 있도록 정책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강력한 정책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산업 혁신에 선도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들과 경쟁해야하는 우리도 앞으로 10년 동안 흔들림 없는 산업정책을 펼침으로써 산업계 분발을 추동해야 한다. 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조산업 중심에 일부 경제 정책 수단까지 가미할 수 있는 `산업경제부(가칭)`로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배경이다.

◇산업 정책 대변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나라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대에서 고착한 경제성장률은 차치하더라도 산업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대표 사례로 `수출절벽`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반등 계기를 잡았지만 2015년 1월부터 19개월 연속 이어진 수출 감소는 우리나라가 수출을 시작한 이래 전혀 겪어 보지 못한 미증유 사태다. 이는 글로벌 저성장과 저유가, 주요 제품의 공급 과잉 등 대외 환경 변화와 함께 산업 경쟁력 약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급기야 석유화학·철강·조선 등 공급 과잉 업종에서 시작된 수출 부진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경쟁력을 갖춘 산업에까지 전이됐다. 주력 산업 경쟁력 약화는 외부 요인과 함께 정부, 민간을 포함한 산업 주체가 단기 성과에만 집착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과)는 2일 “선진국에 비해 고도의 개념 설계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우리나라 산업 환경이 신성장 동력 부재와 성장 정체로 이어졌다”면서 “견고한 제조업과 고급 인력의 성숙한 학습 능력을 기반으로 일관되고 강력한 장기 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기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 및 서비스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도래의 대응에 국가 역량을 총결집시켜야 한다. 이 같은 산업 대변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는 영원한 추격자에 머무는 것은 물론 중국에조차 밀리는 2류 산업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대내외 여건도 좋지 않다. 이르면 올 상반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조기 대통령 선거가 가장 큰 변수다. 정권인수위 기간을 거치지 못하는 차기 정권이 산업 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놓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중장기 산업 정책 마련이 우리나라 미래와 직결된 당면 과제다.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국정 밑그림을 지금부터 그려야 한다.

◇확고한 국가 산업 발전 비전 짜야

차기 정부에서는 장기 산업 청사진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위상과 역할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같은 논의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청사진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의 스마트화·서비스화·친환경화·플랫폼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획, 예산, 세제, 금융,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등 정부 역량이 총합 형태로 집약돼야 한다. 확고한 산업 정책이 선두에 서고 정부 지원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공급 과잉 업종의 구조 조정이 장기 산업 전망보다는 단기성 금융 부실 처리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주력 산업과 ICT 융합도 부처 간 칸막이 및 힘겨루기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차기 정권에서는 산업과 ICT·과학기술·중소기업·특허 정책을 진두지휘할 부총리급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논의가 본격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신성장 동력 부재도 확고한 산업 정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5년마다 정책 기조가 바뀌는 정권과 그에 휘둘리는 정부 부처는 물론 기업들까지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신산업 육성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최근 세계 산업 정책 방향은 단순한 선택과 집중에서 벗어나 장기 관점에서 국가의 전 역량을 어떻게 배치하고 투자할 것인가로 전환되고 있다”면서 “정부를 필두로 우리나라 산업 주체가 모두 단기 성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축적 지향의 장기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월별 수출액 및 증감률 추이] (단위:억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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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메가 트렌드>


4차 산업혁명 메가 트렌드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