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단지 세상의 끝’] 가족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출처 : '단지 세상의 끝'
출처 : '단지 세상의 끝'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연인이나 친구는 성격 차이로 헤어지기도 하고, ‘너는 나를 이해 못해’라며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그들은 나를 사랑할 의무가 없지만 태어나자마자 사랑한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게 분명 어려운 것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나를 100% 이해해주지 못할 땐 섭섭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가족은 이해하는 게 아니다. ‘단지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가족들은 그렇게 지금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사랑한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12년 만에 아들 루이(가스파르 울리엘 분)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오랜만에 아들을 본 엄마(나탈리 베이 분)는 “너희들 어릴 땐 말야…”라며 과거의 추억을 꺼내는데 신나 하고, 작은오빠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 여동생(레아 세이두 분)은 그를 그저 동경한다. 큰 형(뱅상 카셀 분)은 예술가로 성공한 남동생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잘난 인생만 생각하고 살았다며 그를 원망하기도 한다. 겨우 형의 아내인 형수(마리온 꼬띠아르 분)만 정상적으로 ‘대화’를 한다. 유일하게 피가 섞이지 않았고, 그와 어떤 추억도 없는 형수만이 객관적으로 멀리 보기가 가능하다.

루이가 도착한 집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헤어드라이기와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가족들로 시끄럽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엔 어떤 의미도 없다. 가족들은 의미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이런 모습은 조용한 루이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가 집은 한 순간 고요해진다. 이렇게 집은 시끄러움과 조용함이 반복되는데, 대사가 없을 때는 긴 침묵과 인물의 눈빛이 강조된다. 가족들이 쉴 새 없이 내뱉는 의미 없는 대사보다 눈빛과 침묵, 그리고 강렬한 배경음이 더 큰 서사다.

인물들이 같은 단어를 거듭 사용하거나 끊임없이 고쳐 말하는 모습은 영화에서 익숙한 말하기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대사는 쉼표 하나조차도 중요한 요소다. 인물들이 말을 더듬으면서 내뱉는 숨결에는 미세한 떨림이 드러나는데, 자동기술법으로 백스페이스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대본처럼 느껴진다. 배우들 연기 역시 한 번의 NG 없이 이어낸 듯한 날것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가 연극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는 시계의 뻐꾸기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등 연극적인 요소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연극에 최적화된 다섯 사람뿐이며, 장소도 한정적이다. 게다가 카메라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대부분의 장면은 말 하는 사람 한 명만 클로즈업하고 뒷사람은 뿌옇게 처리하거나 잘라버린다. ‘대화’가 아니라 자기말만 하는 사람을 담아낸 것이다.

출처 : '단지 세상의 끝'
출처 : '단지 세상의 끝'

루이는 가족들이 앉는 소파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형은 “네가 불행한 이유는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엄마는 “넌 우리가 널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지? 맞아. 근데 널 사랑해. 12년 만에 돌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루이가 집에 온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가족들에겐 겨우 옛날에 살던 집을 보고 싶단 말만 한다. 그마저도 가족들은 ‘겨우 벗어난 거지같은 집을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 루이는 옛날집이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지만, 사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시작이었던 공간과 자신의 가족이 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끝내 루이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루이는 “더 자주 올게요”라며 집을 떠나고, 엄마도 “다음엔 더 준비하고 맞을게”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는 이 영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 있지만 소통할 줄 모르는 가족들은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갈등할 뿐이다. 인물들의 소통의 부재는 영화 자체에도 답답함을 부여한다. 루이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듯, 관객들이 루이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에 대해 알려준 것은 12년 전에 집을 떠났고, 현재는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예술가라는 정도다. 그래서 관객들마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다만 자비에 돌란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OST는 관객을 사로잡는 멋스러움이 있다. 특히 원색의 이미지와 리듬감 있는 노래로 구성된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을 새로운 세계로 입장시키는 감독의 재주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가스파르 울리엘, 마리옹 꼬띠아르, 뱅상 카셀, 레아 세이두 등 프랑스 대표 스타배우들과 ‘칸의 총아’라고 불리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만남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수상한 작품으로, 오는 18일 국내 개봉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