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배우의 연탄가스 흡입부터 실제 유리 깨기까지…예술을 빙자한 학대?

┃연기자는 ‘실제’ 같이 연기 하는 사람이지, ‘실제 상황’을 작품에서 경험하는 이들이 아니다. 이 ‘실제’ 같은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스태프가 존재한다. ‘목숨 건 연기’ ‘현실감 있는 연기’에서 ‘연기’를 뺀 작품을 향해 대중이 과연 환호할까.┃

사진='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
사진='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영화는 현실 혹은 가상의 세계를 연출해, 매체로 볼 수 있게끔 담아내는 하나의 창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들이 실존 인물인 것 마냥 연기를 펼친다. 많은 창작자들은 그 세계를 최대한 현실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간혹, 과도한 리얼리즘 표방으로 인해 현실과 창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위험한 실연을 행하기도 한다.

19일 개봉한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연출한 조창호 감독은 두 주연배우 서예지와 김재욱에게 요구한 디렉팅으로 ‘배우 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조 감독이 무리한 실연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극중 정원(서예지 분)이 차 안에서 연탄가스를 피우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실제로 서예지가 연탄가스를 흡입한 것. 실제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 감독을 향해 배우 인권 논란이 야기되면서 대중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 사실은 배우들이 영화 홍보 차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알려졌다. 서예지는 “감독님이 혼자 주춤 오시더니 혹시 연탄가스를 실제로 마실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너무 당황했고 감독님께 ‘지금 당장 죽으라는 말씀은 아니시죠?’라고 물었다. 감독님은 정원(극중 서예지)이가 실제 가스를 마셨을 때의 느낌과 감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연탄가스 흡입을 연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연탄을 피우자마자 차 안에 들어갔는데, 지옥의 느낌이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사진=영화사 몸 제공
사진=영화사 몸 제공

뿐만 아니라, 11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도 서예지는 “연탄 연기를 마시는 걸 CG로 해주실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해달라고 하셨다. 영화는 정말 배우가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컷을 안 해주셔서 내가 죽을까봐 불안했다”고 농담조로 말했으나 촬영 당시 느꼈던 불안감은 생생히 전해졌다.

서예지 발언이 화두에 오르면서 함께 출연한 상대배우인 김재욱이 밝힌 이야기도 수면 위로 떠올라 충격을 안겼다. 지난 9일, 한 라디오에 출연한 그는 극중 서예지를 차 안에서 구해내는 신을 촬영하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차 유리가 설탕이 아니라 진짜 유리였다. 슛 들어가기 전에 말을 안 해줬다. 깨고 나서 감각이 없는데 따뜻해서 보니까 손이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만족스럽게 나와서 보람 있었다. 감독님이 정말 미웠다"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조창호 감독은 트위터를 통해 직접 이야기하자며, 자신의 개인 번호까지 공개하면서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대중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며 거센 비판이 쏟아져오자 삭제 후 다시 한 번 해명글을 게재했다. “죄송하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가 맞다. 안전을 비롯해 최선을 다하였으나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먼저 밝힌다”고 설명했다.

사진=영화사 몸 제공
사진=영화사 몸 제공

이어 ‘다른 길이 있다’ 측은 공식입장을 통해 논란 되고 있는 부분들을 짚어내며 해명했고 사과했다. 이후에 열린 19일 관객과의 대화(GV)에서도 행사 시작 직전에 현 사태를 언급하면서 조 감독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배우들도 애정하는 작품이라 자극적인 부분만 논란이 됐다며 적극 옹호에 나섰다.

여러 차례 진행된 해명에도 찜찜한 기운을 지울 수 없었다. 공식입장에선 “촬영 현장에서 진행된 모든 장면에서 위계에 의한 강압적 지시가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며 운을 떼며 “대부분의 연기가 연탄가스가 아니었으나 미량의 연탄가스가 흘러 나왔음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제가 질타를 받아 마땅한 부분이며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서예지 배우에게 공식적인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고 사과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어 “그동안 진행된 많은 영화제, GV, 언론 시사 후 기자간담회, 개별 인터뷰 등에서 서예지, 김재욱 배우는 위 촬영의 경험에 대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조금은 과장된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였고 저도 때로 분위기에 따라서 가담하였다”고 말한 부분은 배우를 전면으로 내세워 방패막이로 삼는 것이냐는 지적도 흘러나왔다.

사진=영화사 몸 제공
사진=영화사 몸 제공

더불어 모조 연탄 제작에 실패해 불가피하게 미량의 연탄가스 흡입이 이루어진 점, 차량 촬영 장면에서도 무술 감독과 함께 대동했음을 설명했으나 배우가 직접 연탄가스를 흡입하고 실제 유리를 깼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공식입장을 살펴보면 분명히 당시에도,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차적으로 스태프 회의에서는 서예지가 빠져있었고 이후 결정된 사항을 서예지에게 제안한 사실 역시 소통의 부재로 읽혔다. 이런 위험한 제안 자체부터가 살인미수가 아니냐고 분노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이러한 감독의 태도에 일각에서는 자살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자살 행위를 행하는 것은 스너프 필름과 다를 것이 있느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은 CG로 처리했다고 설명했음을 보아 충분히 CG처리가 가능한 작업이었다. 부족한 제작비 등의 열악한 상황이었다면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아도, 대중들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사진='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사진='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비단 ‘다른 길이 있다’만을 둘러싸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국내는 물론이며 해외에서도 성행위 장면, 강간, 등 무리한 요구들로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존엄성을 침범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재 영화 ‘전망 좋은 집’에서 연출을 맡은 이수성 감독이 출연한 배우 곽현화와 상의 없이 노출 장면을 삽입해 소송 중에 있다. 더불어, 1972년에 개봉한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속 강간 장면이 배우 슈나이더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베르톨루치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져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슈나이더는 이후 2007년 인터뷰에서 “강간당했다고 느꼈으며 이후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 등으로 괴로워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해 충격을 안겼다.

물론, ‘다른 길이 있다’ 측은 분명한 소통과 강압적으로 진행된 촬영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며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강제로 이루진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 행위가 옳은 것으로, 혹은 배우와 감독의 열정으로 마무리 된다면 이 부당한 요구와 행위는 하나의 당연한 관행이 될 지도 모른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결코 실제 인물이 아니며 그들의 실연이 ‘진정성’과 ‘투혼’으로 포장되어선 안 된다. 촬영장도 배우에게는 하나의 노동현장인 곳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인권위에 예술과 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작품을 대중은 예술로 여기지도, 반기지 않는다.

배우 김여진은 현 상황을 두고 트위터를 통해 “배우는 ‘연기’하는 사람이다. 온갖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고 빠져나오고 전체와 부분을 놓고 정밀하게 계산도 해야 한다. 진짜 위험에 빠트리고 진짜 모욕을 카메라에 담고 싶으면 다큐를 만들어라. 안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긴장하고 몰입할 수 없다”고 말해 많은 대중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