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특별기획/특허강국으로 가는 길>(2)유명무실한 특허소송

국내 기업이 특허침해를 보전하기 위해 국내 대신 해외로 나선다. 국내 출원(신청)보다는 해외 특허 확보에 사활을 건다. 전문가들은 국내 특허소송이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특허 무용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허권자가 소송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턱없이 작은 손해배상액

A기업은 특허소송에서 `상처뿐인 승리`를 얻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폭발방지장치 특허를 보유한 이 회사는 2004년 경쟁업체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8년에 걸친 소송 끝에 얻어낸 배상액은 1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장기간 분쟁에 들어간 변호사 수임료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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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IP) 선진국인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 미국에서 벌어진 애플과 삼성전자 간 특허전쟁에서는 단 몇 개의 특허와 디자인특허만으로 수조 원대 손해배상액이 인정됐다. 손해배상액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자료를 보면 한국 법원의 특허침해소송 배상액 중앙값은 약 6000만원(2009~2013년)이다. 반면 다국적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미국 법원의 배상액 중앙값을 약 80억원(2011~2015년)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133배다.

양국 시장규모(14배)를 고려해도 국내 법원이 부과하는 배상액이 지나치게 작다. 특허권자가 굳이 국내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러한 환경과 무관치 않다. 특허업계에서 미국특허와 한국특허 가치를 100대 1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훈 미국변호사는 “최근 KAIST와 성균관대가 미국에서 제기한 특허침해소송도 배상액이 작은 국내소송보다 미국소송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사석에서 한 판사가 `의료사고 배상액이 수억 원 수준인데 인명과 무관한 특허소송 배상액이 수억원을 상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특허소송을 바라보는 인식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효적 특허소송, 제도 뒷받침 필요

특허소송이 특허권을 보호하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침해 입증에 필요한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나 고의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주로 언급된다.

특허업계 관계자는 “한 판사는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해도 증거 확보에 필요한 자료를 침해피의자가 영업비밀이라며 제출하지 않고, 침해 인정 후에도 배상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당사자가 기피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증거를 확보할 제도 뒷받침이 있어야 배상액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특허침해·손해액 입증을 용이하게 만드는 개정 특허법이 시행되면서 침해자가 자료 제출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특허권자 주장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돼 특허소송 실효성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고의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도입되지 않았다.

김재연 미국변호사는 “강력하고 실용적인 특허소송제도가 미국을 IP 강국·지식사회로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특허권을 실효적으로 보호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발명과 특허활용이 촉진되고, 덩달아 특허분쟁이 늘어 특허법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특허소송에 대비하고자 특허경쟁력 강화에 나서면서 특허 품질·특허인력 실력 향상, 특허 매입·라이선스, 기술가치평가 등 IP서비스업 활성화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실효성 있는 배상액 판결로 특허소송이 발전해야 특허 사업이 활성화되고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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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진 IP노믹스 기자 mj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