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VR로 뜨는 가상훈련 시장

지난해 일본항공(JAL)이 조종사 훈련에 마이크로소프트(MS) 가상현실(VR) 기기 `홀로렌즈`를 도입했다. 부조종사 훈련에 사용하기 위해 보잉 737-800기 조종석을 재현했다. 기체까지 움직이는 시뮬레이터 전 단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는 모스코니센터에 화성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화성 탐사 차 큐리오시티가 2012년부터 수집한 정보로 3차원 지도를 제작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보다 앞서 생산 공장에 가상조립(VA)을 도입했다. 작업자가 VR 기기를 쓰고 VR 속 부품으로 자동차를 조립하는 방식이다.

가상훈련(VRT)은 VR를 이용해 위험하고 값비싼 현장 훈련을 대체한다. 실제와 유사한 환경에서 안전한 교육·훈련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안 검증이 가능, 불필요한 설비 투자를 방지한다. VRT가 국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이유다.

최근에는 제조, 장비운전,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떨어져 있는 다수 참여자들이 VR를 공유, 협업과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난 훈련 때 현장 지휘자와 소방대원, 구조·구급대원, 경찰관 등이 한 번에 참여할 수 있다.

[이슈분석]VR로 뜨는 가상훈련 시장

◇가상훈련, 대중화로 시장 확대

VR 기술 발전으로 VRT 시장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시장 참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가 주도해 온 VR 기술에 글로벌 기업이 잇따라 투자를 시작했다. 삼성 기어VR, HTC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 등이 대표 기업이다. VRT 시스템 몰입형 기기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중화 여건이 마련됐다. 10만달러에 이르던 VR 기기가 600~7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닌텐도 위(Wii), MS 엑스박스 키넥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 기존의 VR를 이용한 게임기가 머리 착용 형태로 진화하면서 개인용 VRT 시스템 수요가 증가했다.

이 덕분에 VRT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5년 119억달러에서 2022년에 165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4.4%다.

◇국내 시장, 성장 속도 빨라

국내 VRT 시장 규모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연평균 10.6%다. 2013년 1조7000억원에서 2022년 4조2000억원으로 예상된다.

국방 중심이던 국내 VRT 시장도 최근 제조를 비롯해 의료, 수송 분야에까지 확대됐다. 특히 제조 분야 시장이 점차 늘면서 2022년에는 국방과 유사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 분야 VRT 시장 규모는 2013년 3500억원에서 2015년 6120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엔 2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분야는 수송·운전이다. 2015년 이후 2022년까지 연평균 22.4%에 이른다. 2013년 155억원에서 956억원으로 6배 이상 커진다.

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 규모는 2013년 9억4000만달러에서 10년도 안 돼 5배 가까이 늘어난 4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쟁력은 여전히 부족

그러나 국내 VRT 산업 경쟁력은 시장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시장 대부분을 일부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 1조4000억원 규모 가운데 1조2000억원이 대기업 몫으로 돌아갔다. 2000억원을 두고 200개 가까운 중소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은 10개 미만이다. 70% 이상이 5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매출이 적으니 남는 게 없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할 돈은 더더욱 없다. 신기술이나 제품 개발 역량이 부족한 이유다. 그나마 개발하는 기술도 산발로 이뤄져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못한다.

3D그래픽 엔진을 제외하고는 시뮬레이션 엔진, 디스플레이 모듈, 모션 발생 장치, 햅틱 제시 장치 등 핵심 기술 수준이 선진국 대비 80%에도 못 미친다.

소프트웨어(SW)는 물론 하드웨어(HW)도 대부분 외산이다. 하이엔드급 시뮬레이터용 프로젝터도 외산이 점령했다.

인프라 경쟁력도 뒤처진다.

직무 훈련을 위한 교육 시설도 부족하다. 국가고시 실기 시험에 가상 시뮬레이션을 도입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이 없다. 마중물 역할을 할 진흥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

국가 재난이나 화재, 사고 등 위험 상황에 대비한 가상훈련센터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서울시민안전체험관 두 곳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등에서 관련 훈련을 수행하지만 수요에 비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정책 지원 및 과제

정부에서는 `IT·SW 융합을 통한 주력 산업 구조 고도화`(국정과제7)와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 기반 조성`(국정과제8) 정책을 2013년부터 시행했다. 같은 해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도 과학기술 정책 기본 방향과 전략을 제시했다. 이때 국가전략 중점 기술에 VR·증강현실(AR)과 실감형 콘텐츠 등이 포함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민간 신산업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 지식과 제조를 융합하는 창의 산업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금형과 용접 분야 이트레이닝, 기계설비 애프터마켓 등 제조업 서비스화가 핵심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에 따르면 민간에서도 VR 시장을 확대하려면 독자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한다. 가상훈련시스템 표준화도 마련돼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시장 목표를 기업간거래(B2B)에서 기업·소비자간거래(B2C)로 중심 이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VRT 시스템 전문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현재 KAIST·남서울대·영산대 등 일부 대학과 한국전파진흥협회 전파방송통신인재개발교육원, 한국콘텐츠아카데미, 에이콘아카데미 등에서 VRT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IT·콘텐츠 분야에 편중돼 있다. VRT 시스템 운영·개발과 디지털화, 마켓플레이스, 시나리오 저작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업계 측은 한목소리를 냈다.

진흥회 관계자는 24일 “VRT 산업이 국가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융합, 대중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면서 “핵심 기술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술을 보완하는 한편 제도 차원의 지원을 병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VRT 시스템을 이용한 직업훈련과 공인자격시험 등을 입법화하는 한편 인증 체계 구축과 우수 중소기업 육성 방안도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창선 성장기업부(구로/성수/인천)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