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53> 혁신 리더십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lt;53&gt; 혁신 리더십

626년 7월 이세민은 형 태자 이건성과 제왕이던 동생을 죽이고 스스로 태자가 된다. 황제에 오른 뒤 이날을 돌이켜 논공행상을 했다. 작위와 봉읍을 나눈 후 묻는다.

“타당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말하라.” 숙부뻘인 이신통이 말한다. “신은 황제께서 처음 봉기했을 때부터 함께 전장을 누볐습니다. 한데 방현령같이 후방에서 편히 붓이나 잡던 이들이 더 큰 작위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공평하다고 하겠습니까?”

이세민이 답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천리 밖에서 기책과 전략을 제시한 바 장량에 비견합니다. 숙부는 전장에 자주 나갔으나 대개 자신의 화를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방현령의 공이 숙부보다 어찌 작다 하겠습니까.”

긴 중국 역사에 명신은 적지 않다. 유독 당 태종 시절에는 여럿이다. 이세민이 진왕 시절 진황부에 이른바 `18학사`가 있었다. 방현령, 두여희, 우세남, 공영달, 요사렴, 육덕명 등. 현무문 정변 이전에 이건성 밑에 있던 위징도 발탁한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 내겐 나를 돌아볼 거울이 사라진 셈이오”라고 탄식한 대상이 바로 위징이다.

두여희도 있다. 고사성어 방모두단(房謨杜斷)은 방현령과 두여희 두 사람을 칭한다. 방현령이 계략을 세우고 두여희가 정한다는 의미. 이후 당 태종은 정관의 치(貞觀之治)란 태평성대를 이룬다.

청나라 강희·옹정·건륭의 치, 한나라 효문제와 효경제의 치와 더불어 5000년 중국 역사를 통틀어 3대 태평성대라 일컫는 정관지치를 3년 만에 이룬다.

성공한 기업은 무수히 많다. 혁신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연 기업도 적지 않다. 혁신과 성공을 반복하고, 기업 가치를 지속하는 기업은 드물다. 왜 그럴까. 이들 기업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까.

미국 브리검영대 네이선 퍼 교수와 제프리 다이어 교수는 리더십을 말한다. 혁신에 필요한 리더십은 일반 리더십과는 다르다고 한다. `모두 스티브 잡스가 돼야 할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결단보다 프로세스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1980년대 말 NEC는 소형화 기술을 개발한다. 소식을 접한 부사장 톰 마틴은 급히 엔지니어를 모은다. 초소형·초경량 노트북을 테스트한다. 문제가 있었다. 하드 드라이버를 내장하면 무게가 늘었다. 결정이 필요했다. 외장형으로 정한다. 필요하면 언제든 연결하면 되니 문제없다고 본다.

`울트라라이트(UltraLite)`란 이름으로 시장에 나온다. PC매거진, 뉴욕타임스, 컴퓨터리포트는 “포르셰를 타는 듯하다”고 소개한다. 정작 판매는 저조했다. 문제는 외장형에 있었다.

두 교수는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두 번째로 마틴의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일까.

첫 번째 답은 명료하다. `언제나 연결하면 된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두 번째 답은 무엇일까. 마틴은 잘못된 판단을 했다. 그것으로 끝일까. 두 교수는 아니라고 한다. 마틴이 실패한 것은 잘못된 판단 자체보다 그것을 자신이 결정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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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제품은 위험이 따른다. 보통이라면 의사결정은 대개 리더의 몫이다. 그 대상이 혁신이라면 그렇지 않다.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이 아니라 바른 결정을 하는 방법을 디자인하고 가려내는 것이다.

두 교수는 혁신이란 잘 결정하는 것보다 잘 결정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결정 대신 하나의 혁신 과정을 디자인하라고 조언한다. 결정을 하되 다른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프로세스를 만들고 혁신을 수용할 조직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본다.

어느 날 이세민이 위징에게 물었다. “태평성대를 이루려면 백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나.” “아닙니다. 현명한 군주라면 1년이면 충분한데 백년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낙양궁 수축이나 봉선대례같이 위징이 간언해서 막은 일은 수없이 많다. 당 태종이 두 번째 고구려 정벌에 나서자 뛰어가서 막은 이는 방현령이다. 그런 방현령이 거사 때면 매번 두여희의 판단을 기다렸다. 당 태종의 치세에는 이들로 둘러싸인 프로세스가 있었다.

상식은 결정이란 경영진 몫이라고 한다. 혁신만큼은 다르다. 혁신 리더십은 상식과 다르다는 두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기억해 둘 만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