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54> 디자인 방식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lt;54&gt; 디자인 방식

과거 데이터가 쌓이더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미리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호논리학자 찰스 퍼스의 이름을 따 `퍼스의 역설(Paradox of Peirce)`로 불린다. 어쩌면 새로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분석과 더불어 직관이 필요할지 모른다.

2014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지역센터는 비슷한 하루를 시작했다. 장애인 가정을 돕기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절차가 가로막았다. 짧아도 세 달은 족히 걸렸다. 그동안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심사를 받아야 했다.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시스템은 그렇게 짜여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어느 날 시험을 하기로 한다. 캠핑카를 하나 빌린다. 지원 담당자 8명을 태우고 자폐증 아동을 둔 가정을 찾는다. 캠핑카에 앉아 상담을 했다. 한나절 만에 아홉 건을 처리했다. 처리 절차를 정리해 프로세스 지도(process map)를 작성한다. 한 장소에 모여 처리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가 놀라운 차이를 만든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역사는 1850년대까지 거슬러 간다. 3146석짜리 전쟁 기념 오페라하우스는 지역 명소다. 1927년 선거로 지어진, 그래서 `시민의 오페라 하우스`로 불렸다. 재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예산 제약에 뭔가 새로운 시도란 사치스런 용어였다.

이즈음 발레 공연은 변하고 있었다. 2015년 오페라에 새 시험을 해보기로 한다. 오페라 하우스 대신 인디밴드 공연장을 택한다. 공연 타이틀도 `간신히 오페라 같은(Barely Opera)`이라고 붙였다. 목적은 오페라를 구닥다리로 생각하는 젊은 관객 찾기였다. 캐치프레이즈처럼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디제이(DJ)가 나왔다. `휠 오브 포천(Wheel of Fortune)`을 모방해 `휠 오브 뮤직(Wheel of Songs)`도 준비했다. 선곡은 휠을 돌려 정하기로 했다.

2016년 3월 2일 저녁 샌프란시스코 펠가의 릭쇼 스톱 주변에 400명이 줄지어 선다. 299석짜리 소박한 공연장은 오페라를 보러 온 젊은 관객으로 만원을 이룬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두 가지 시험 모두 소박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90일이나 걸리는 심사 절차에 부모는 지쳐 갔다. 제너럴매니저 매슈 실복조차 오페라에서 더 이상 젊은 관객을 찾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소 플래트너 디자인연구소 작품이었다. 아이디어를 얻으라. 투박하지만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라. 적용하라. 문제를 확인하고 개선하라. 고작 몇 시간 만에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실패는 예상된 것이다. 완벽해지는 대신 빨리 적용하고, 개선하고, 다시 실험했다. 실패도 과정일 뿐이다. `이왕 하려면 일찍 하라`는 주의였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로테르담 경영대학원 디르크 다이히만 교수는 몇 가지를 시도해 보라고 한다. 첫째 형식을 벗어나 작은 시험으로 시작하라. 병원이란 간혹 이유 없이 두려운 곳이다. 어린 아이라면 더하다. 내방 전에 동물이 그려진 티셔츠를 보냈다.

티셔츠를 입은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선다.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담당의사 가슴에 같은 동물이 그려진 배지가 달려 있다.

둘째 고객의 시각과 감정을 이해하라. 로테르담 안과병원은 접수창구 높이를 낮췄다. 아이가 창구 너머에 있는 눈에 맞출 수 있도록.

셋째 프로세스 지도를 만들어 보라. 포스트잇에 업무를 나열하고 줄여 나가라.

작은 시험이 아이디어를 효과 높은 솔루션으로 만들었다. 모든 시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문제와 상황은 종전보다 잘 이해됐다. 정답에 차츰 가까워졌다.

다이히만 교수는 이 방식에 숨은 장점이 있다고 한다. “모두 당신을 혁신가로 생각할 겁니다. 당신 기업이 하는 일은 관심의 대상이 되죠. 혁신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말이죠. 직원이 뿌듯해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