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플랫폼 지속성

[기자수첩]플랫폼 지속성

1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 둔 삼성 갤럭시 기어S2를 최근 다시 꺼내 쓰고 있다. 아이폰 연동 애플리케이션(앱)이 마켓에 등록됐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알림 메시지를 시계로 보는 건 제법 중독성이 있다. 이건 또 패션 아이템이 아니던가. 더 멋진 시곗줄을 구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초 사옥에 있는 딜라이트 숍을 찾았다. 그러나 “신형 기어S3용 시곗줄만 판매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적잖이 실망했다. S2와 S3는 시곗줄이 호환되지 않는다. S2는 20㎜, S3는 22㎜ 폭의 시곗줄을 쓴다. 다행히 시곗줄은 다양한 규격 제품이 온라인 마켓 등 여러 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기어S2 시곗줄은 구했지만 딜라이트 숍에서 느낀 큰 실망감은 학습 효과였다.

하드웨어(HW)든 소프트웨어(SW)든 한국 기업은 유난히 플랫폼 전략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12년 삼성전자 TV 사업부는 에볼루션키트라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다. 이 장치를 TV 뒤에 장착하면 기능이 업그레이드됐다. 에볼루션키트 전략은 2015년에 중단됐다. LG전자는 모듈식 스마트폰 디자인을 1년 만에 포기했다. 소비자도 협력사도 국내 기업의 플랫폼 전략에 동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지난해부터 오픈 파운드리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부 몇 곳의 대형 전략 고객사를 지향하던 사업 구조를 뜯어고쳐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신규 고객사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 지속성이 떨어지면 고객사는 그들 고객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과거 국내 A사는 삼성이 갑작스레 공정을 없애야겠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10년치 물량을 미리 생산했다. 그 재고는 아직도 여러 창고에 분산 보관하고 있다.

오픈 파운드리에 관한 생각을 묻는 삼성의 질문에 많은 팹리스 업체가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픈 파운드리로 사업을 키우고 싶다면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생태계 형성은 장기 안목과 신중한 전략 수립에서 나온다. 촘촘하게 계획을 잘 세웠으리라 기대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