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커브 길에 들어선 핀테크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KPMG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산업에 투자된 금액은 2016년 3분기에만 2조9000억원에 이르렀다. 눈여겨볼 부분은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가 북미 지역을 추월, 전체 절반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이 아닌 금융회사의 투자 전략 참여도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세 건 가운데 한 건에 달했다. 투자 속도와 역동성 측면에서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기술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한국의 핀테크 산업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전자금융 시초인 인터넷뱅킹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건 1999년 여름이다. 이후 2003년 가을 가상머신 기반의 모바일 뱅킹이 소개돼 7년에 걸쳐 사용자 1000만명을 확보하며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나서는 보급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2년 만에 1000만명을 모으는 등 2014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 인구가 활용하게 됐다. 다시 말해서 국내 핀테크 산업의 `하드웨어(HW)` 인프라는 이미 완비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높은 보안 수준이 요구되는 금융업 특성상 새로운 기술 도입은 어려웠다. 얼마 전만 해도 정보 보호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금융회사의 모든 시스템에 망 분리를 요구하는 등 소프트웨어(SW)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법규 개선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출범한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과 10월에 발효된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안은 금융 거래 정보를 손쉽게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여건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영국 정부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를 국내에서도 연중 시작한다는 소식에 기대 어린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정보기술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던 시기를 돌아보자. 데스크톱이 보급되고, 집마다 인터넷이 연결되고, 스마트폰이 개인 손에 쥐어지는 등 얼마나 많은 혁신이 이뤄졌는가. 그 과정은 기술을 개발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만든 제품을 소비하는 수요, 데스밸리를 넘을 수 있게 도와 주는 모험자본, 새로운 기술 도입의 여건을 조성하는 정부와의 사각 편대다. 넘어지지 않고 경기를 완주하려면 발을 잘 맞춰 가야 한다.

전술한 전자금융감독규정을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금융권에 신설되거나 개정된 법규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금융기술 산업 발전이 새로운 커브 길에 들어선 것이다. 자동차 경주를 보면 승부는 커브 길에서 난다.

앞서가던 차는 보통 코너 안쪽으로 주행하면서 거리를 줄이지만 방향 전환을 빠르게 해야 하는 까닭에 감속의 폭 또한 크다. 이에 따라 뒤따라가던 차의 유일한 추월 차선은 커브 길의 바깥쪽이다. 더 긴 거리를 돌지만 속력을 덜 줄이기 때문에 이어지는 직선 구간에서 치고 나갈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금융 소비자 보호가 중요한 금융 산업에서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시장의 수요가 상존하고, 혁신에 투자하는 기업과 모험자본이 갖춰진 지금 혁신 수용에 선행될 법규 개선에 정부의 더욱 적극 대응을 바란다. 글로벌에 한 발짝 뒤처진 한국 핀테크 산업이 지금 들어선 커브 길이 끝날 때까지 반전을 만들지 못한다면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번 커브까지 역전하기 어렵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kelvin@kc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