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예정가격(豫定價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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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가격(예가)은 공공사업 발주 때 기준이 되는 입찰 상한 가격이다. 낙찰가격은 예가 이하로 결정된다. 예가는 실제 거래 가격을 원칙으로 한다. 예가가 공공정보화 사업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보화 사업 수행 업체에 손실을 안겨 주는 원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공공기관은 정보화 사업 추진 때 내부 논의를 거쳐 사업 예산을 책정한다. 이후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신청, 자금을 배정 받는다. 이때 예산 일부를 삭감한다. 100억원이 필요한 사업이 95억원으로 줄어든다. 줄어든 예산에 발주 때 예가가 맞춰진다.

건설·토목 사업은 통상 약 5%를 삭감해 예가를 책정한다. 정보화 사업은 10%, 최대 20%까지 삭감한다. 예가는 초기 책정 예산의 80%가 안 된다. 발주 시점부터 저가 사업이 된다. 마진이 안 남는 장사다.

정보기술(IT) 업계는 공공정보화 사업에 예가를 적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과거 정부는 예산이 방만하게 운영, 예산 절감 차원에서 예가를 도입했다.

지금은 정보화 예산이 턱 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사업 예산에 예가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낙찰가격은 가격 경쟁으로, 이보다 낮은 초기 책정 예산 70% 수준이 된다.

사업 범위는 입찰, 계약, 분석·설계, 구축, 테스트 등 과정을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업을 수행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이유다. 상당수 중견 IT 서비스 기업이 공공정보화 사업에서 큰 손실을 봤다. 손실은 고스란히 소프트웨어(SW)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업 완료 후 유지보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보시스템 규모는 커졌지만 유지보수료 적용 기준은 오히려 줄어든 70%가 사업 예산이 된다. 유지보수 요율을 현실화해도 업계는 저가 사업을 벗어나지 못한다. 적자를 면하기 위해 제안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사업을 수행해 수익을 올려야 할 기업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보화 예산을 늘리는 게 어렵다면 예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실효성 없는 수십 가지 정책보다 효과 높은 정책 하나가 필요한 시기다.

신혜권 SW/IT서비스 전문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