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 공공 발주 늘어나는데…최저가입찰로 공급사는 되레 감소

한 공용충전기 입찰 기업이 발주공기업 실사를 받기 위해 주차장에 포장을 뜯지도 않은채 외부제작 충전기를 쌓아놓고 있다.
한 공용충전기 입찰 기업이 발주공기업 실사를 받기 위해 주차장에 포장을 뜯지도 않은채 외부제작 충전기를 쌓아놓고 있다.

정부·공기업 주도 전기차 충전기 구축 물량은 급속도로 느는데 반해 충전기 제작·생산업체는 이를 감당할 만큼 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줄고 있다. 주요 발주처인 한국전력·환경공단이 입찰방식을 최저가 입찰제로 하면서 생산단가 맞추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개발·생산은 포기하고 다른 회사 제품으로 입찰하는 상황이다. 최근엔 생산시설을 갖추고도 정작 생산을 포기한 업체까지 나왔다. 앞으로 더 늘어날 물량 소화를 위해서라도 저가 경쟁을 부추기는 입찰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일 충전기 업계에 따르면 한전과 환경공단 공용 급속충전기(50㎾h급) 낙찰 공급가가 대당 1600만원대까지 낮아졌다. 지난해 상반기 2000만원 안팎에서 20% 이상 떨어졌다.

이렇게 가격경쟁으로 치우치다 보니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올 들어 충전기 제작·생산 업체는 네 곳에서 두 곳으로 줄었다.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으로 입찰하는 사례까지 빚어졌다.

공용 전기차 충전기(급속) 시장은 지난해 1000대 미만에서 올해 공공 입찰 물량이 2000대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충전기 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과 환경공단이 비전문기업 난립을 막는다는 취지로 지난해 적격심사(총액제안입찰)제도를 2단계 경쟁입찰로 바꾼 게 오히려 단가경쟁을 부추기게 됐다”며 “업체수와 공급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충전기 가격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최저가입찰이란 제도 탓에 인위적으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까지 공공기관 입찰은 신용평가·특허보유·공장등록 등 서류 제출만으로 입찰자격을 부여했다. 이후 발주처가 기준 가격을 제시하면 제시한 가격 범위 내에서 투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제조·생산능력이 없는 비전문 기업까지 난립하면서 사전 현장 심사 등을 강화하는 2단계 경쟁 입찰제로 바뀌었다. 이전에 가격 상·하한선을 제시한 반면, 바뀐 제도에선 투찰가격 기준을 두지 않아 최저가 경쟁을 유도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하지만, 발주 공공기관은 현행 제도나 절차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과 함께 현황 파악이 먼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최저가입찰을 부추긴 게 아니라 비전문 업체를 가려내기 위해 바뀐 제도를 악용한 기업이 있는 반면에 피해를 보는 기업도 있다”며 “입찰 제도를 개선해 문제가 없도록 조치할 계획이며, 사고 대응이나 안전 관리 미흡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