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 펀치]<6>누구를 위한 4차 산업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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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컴퓨터 의사, 빅데이터로 똑똑해진 홀로그램 변호사, 스스로 고속도로를 누비는 자율주행자동차, 혼자 배달하고 돌아오는 배달부 드론 등이 사람을 대신하고 때로는 인간을 밀어내기도 한다. 별로 달갑지 않은 모습이지만 피해 갈 길은 별로 없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다. 유니언은행(UBS)에 의해 4차 산업혁명 적응도가 세계 25위로 평가되는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지능정보사회추진단을 가동하는 등 열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미래 변화에 대한 전체 이해도는 부족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경제 성장의 도구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단순하다. 기업과 국민이 신바람 나게 생활하도록 도우면 된다. 과거처럼 법과 제도로 시장 및 사회를 통제하기보다는 산업, 시장은 민간에게 맡기고 국민 행복 우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꼭 필요하다면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장 정책과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선제 제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조업의 지능화는 기자·의사·변호사와 같은 전문직뿐만 아니라 교환원·경비원·운전기사 등 단순직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존 직업의 절반이 사라지고 필요 근무 시간이 20%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실직에 대한 우려가 도를 넘고 있다. 정부는 경직된 고용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창출에 주력할 때다. 여유 시간이 많아지고 단순한 지식이 필요 없는 사회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개념과 가치의 재정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세 차례의 산업혁명 때마다 일자리 감소는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해결책은 분명히 있다.

기술이 노동 시장을 대체하는 동안 기술이 만들어 내는 부는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미 상·하위 소득 계층은 두꺼워지고, 중간 계층은 사라지고 있다. 빈부 격차는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 분열을 초래하고 국가 존속까지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시급한 치유가 필요하다. 소득이 소수 개인에게 편중되는 현상을 방지하고, 기술 이익을 적절히 분배하는 동시에 불로 소득에 의지하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 약자는 이미 정보화라는 괴물에 의해 사회 구석방에 갇혀 있다. 잘못하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괴물이 아예 구석방에 자물쇠를 채울 수도 있다. 700만명 가까운 노인과 전체 인구 5%에 이르는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디지털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하고 지원해야 한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자동차 이용 방법과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소용돌이가 맞물려 혼돈의 정점에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 차리라고 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대선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을 무기로 장착하고 전장에 나온 듯하다. 이제 그 무기가 국민을 위한 실전용인지 구호만 있는 선거용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이다. 임기 5년만이 아닌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누구에게 부여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다음 정부에서는 국민과 대통령이 일심단결해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모든 국민이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