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지배구조 개선 시급하다]<중>두 얼굴의 중견기업

중견 가구 제조사 보루네오가구는 아직도 경영권 분쟁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마치고 재무구조 개선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유가증권시장 거래 재개를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보루네오가구는 법정관리 졸업 후 끊임없는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창업주가 법정관리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지분 5% 안팎에 불과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이 끊임없이 경영권을 위협했다. 이 여파로 매출은 2000년 1300억원에서 2015년 439억원로 떨어졌다.

경영권 분쟁은 법정관리를 마친 대다수 기업이 직면하는 문제다. 동양그룹에서 분리된 동양네트웍스, 지난해 상장 폐지된 현대페인트 등도 법정관리 이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창업주 손을 떠난 기업은 회사 고정자산을 노리는 무자본 M&A 세력 등 투기자본에 흔들리곤 한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창업주가 없는 회사는 결국 자본 논리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친족 경영으로 회사 장악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경영권을 방어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중견기업 대부분은 친족 기업이다. 창업자 2~3세 경영인이 회사 전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견기업 최대 관심도 경영권을 어떻게 승계하느냐다. 최근 이어지는 상장 중견기업의 지주회사 전환 추진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다. 이미 오리온, 매일유업 등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을 추진 중이다. 삼진제약, 광동제약, 대덕전자, 윌비스, 환인제약, 벽산, 빙그레 등도 지주회사 전환에 나설 것으로 증권가는 관측한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내부거래도 마찬가지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일부 중견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은 대기업집단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 성우하이텍그룹은 계열사 에이앤엠, 아이존과 내부거래가 각각 111.97%, 104.68%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비중은 11.7%다.

농심, 한미사이언스, 한국콜마, 고려제강 등 20개 중견기업 가운데 10개사는 내부거래로 회사 기회를 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개 기업에서 발견된 일감몰아주기 의심사례는 45건에 달했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견기업 내부거래 행태도 대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특수 관계인에 부당 이익 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을 비대기업 집단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견기업들은 친족 중심 지배구조 체계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현행 제도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비상장 중견기업 뿐만 아니라 상장사들까지도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경영권 방어 수단 없이 법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강제해서는 기업들이 모두 쓰러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중견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법으로 강제하기 보다는 시장 차원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최근 발의된 상법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강제를 의미한다”며 “이에 앞서 경영권 분쟁 등 지배구조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현실을 반영해 기업 스스로가 관련 사항을 공시하도록 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