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연구비 투명성 확보로 미래 밝히자

[ET단상]연구비 투명성 확보로 미래 밝히자

정부가 지난해 국가 연구개발(R&D) 34개 주요 사업 대상의 표본 점검을 실시한 결과 167건에 이르는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연구비 부정 사용 등이 포함된 정부 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의 발표는 일부 연구자가 자신의 책무를 잊고 사익을 좇을 때 어떤 일이 도래하는지 보여 주는 참담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본청원(正本淸源)`이란 옛말이 있다. 근본을 바로잡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전미개오(轉迷開悟)`도 있다.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본다는 불교 용어다. 이 둘은 몇 해 전 전국 대학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로 발표되며 널리 알려졌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위해 소중한 국고를 지원받는 연구자들이 다시금 되새겨야 할 말이다.한 국가의 R&D 투자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통신은 물론 각종 정밀기계, 외과수술 등 광범위하게 쓰이는 레이저 기술은 100년 전인 1917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기초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도 수가 한정된 초창기 때 컴퓨터 사용 효과를 보기 위해 시작된 기초 연구에서 시작됐다. 암 치료와 범죄 수사에 중요하게 기여한 게놈 프로젝트도 유전자 관련 기초 연구가 쌓이고 발전해서 이룩한 성과다. 그 밖에도 데이터처리 기술, 위성항법장치(GPS), 리튬이온전지, 휴대폰, 기상예보 등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수많은 기술이 오랜 R&D의 결과물이다.

이렇듯 기초 연구가 응용 연구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제품이나 서비스로 개발될 때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기초 연구가 응용 연구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경쟁 제품을 물리치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다윈의 바다`를 지나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R&D가 지속돼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R&D 지원은 기초 연구가 모든 어려운 고비를 지나 마침내 국가 미래 먹거리로 탄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예산이다. 우리나라는 그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2014년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연구비(723억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전 세계 국가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높은 비율로 R&D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일부 연구자가 R&D비를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개선되고 청렴한 연구 생태계가 형성돼야 국가 R&D 생산성과 효율성이 제고된다. 나아가 국가 경쟁력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확산되는 등 세상은 빠르고 험난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핵심은 역시 기초 과학 연구와 첨단 과학 기술 개발일 수밖에 없다. 고도의 생산성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 기술 R&D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국가 R&D 투자가 더욱더 효과 높고 생산성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먼저 과학기술계 연구자가 정본청원 자세와 사명감으로 연구에 몰입해야 한다. 정부는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연구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되 지원 예산이 국민 혈세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연구자 개개인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 연구자의 일탈로 말미암아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게 하는 국가 R&D라는 큰 바퀴를 멈출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로 더욱 튼튼하게 점검하고 정비, 더욱 힘차게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바퀴의 축을 이루고 있는 정부와 연구비 감독기관 및 연구자 모두가 자정 노력에 최선을 다할 때 죽음의 계곡과 다윈의 바다를 건너 지속 발전할 수 있는 R&D 생태계가 조성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심순 한국연구재단 감사 ssoon@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