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9>후쿠시마와 바라카 사이에 놓인 원전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60년 활동 가운데 가장 내세울 만한 일 60가지를 사진으로 정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첫 원자력 발전소인 바라카 원전이 제대로 지어지도록 지도했다는 것이다. 이 원전은 한국이 건설 수주한 것이다. 총 4기에 이른다. 오는 5월 1호기를 필두로 2020년까지 차례로 가동될 예정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세계 원전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건설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제때, 제 돈으로 지어진 원전은 바라카 원전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원전 건설은 예정보다 늦어지면서 금융비용이 올라 사업이 부실해지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내용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특집으로 실리는 등 세계 원자력계의 최대 주목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이 같이 칭송을 받는 원전이 나라 안에서는 마치 공공의 적처럼 푸대접 받고 있다.

꼭 6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다른 나라들은 시간에 비례해 관심이 엷어지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반원전, 탈원전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 개봉된 원전 재난 영화 `판도라`의 파급력도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 영화는 설계 수명 40년이 거의 다된 한별 1호기가 리히터 규모 6.1의 지진으로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발생, 냉각 장치가 작동 불능에 빠짐으로써 결국 심각한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사고 발생 원인과 과정이 경주 지진, 현 정부 재난 지휘체계 부재, 현장 대응과 책임 혼선 등 현실과 맞물리면서 국민의 공감을 얻으며 반원전 분위기가 고조됐다.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법원의 수명 연장 취소 판결도 악재가 됐다. 이에 앞서 월성원전 1호기는 2012년 11월 설계 수명이 끝나 한동안 가동이 중단됐다가 2015년 2월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키로 결정된 바 있다.

이제는 원자력이 정치 이념화하면서 유력 대통령 선거 주자들은 대부분 탈원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11기가 10년 이내에 사라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 번 무너진 원전 산업의 생태계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며, 원전 관리자들의 이른바 임계 집단 지능 붕괴로 나머지 원전의 안전성도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쪽이나 환경론자들은 신재생에너지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명쾌한 답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도 풍력발전은 전체 전기의 2.6%, 태양광 발전은 0.5%밖에 공급하지 못한다. 오히려 석탄이 40% 이상 공급하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부의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9년 기준으로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과 설비 용량 비중을 각각 11.7%, 20.1%로 상정하고 있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에서 최근 92%로 낮춰진 것은 신재생에너지 덕분이지만 신재생에너지 제약 조건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의존도 줄이기, 노후 원전 폐로 사업 추진, 고속 증식 원형로인 `몬주` 폐로 결정 등 핵연료 사이클은 유지한 채 원전 사업을 전면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센서, 빅데이터, 3D 프린팅, 인공지능(AI) 등을 원자력에 적용해 `안심-지능형 원자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원전 경제성과 신뢰성을 4차 산업혁명이 담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원전 역사를 보면 3대 사건이 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사고, 일본 후쿠시마 사고다. 원자력 환경은 사고 전후로 `르네상스와 빙하기`라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지금은 그 한복판에 있다. 미래를 내다본 원자력 정책과 전략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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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