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11>“잠시만 기다리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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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lt;11&gt;“잠시만 기다리실게요”

“검은색은 없나요?”

“검은색도 있으세요. 찾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실게요.”

거슬리다 못해 짜증이 난다. 상냥한 미소, 엉터리 존칭. 완벽한 세트 구성이다. 백화점 직원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언제, 누가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놨을까. 커피숍, 음식점, 패스트푸드점 어딜 가나 '잘못된 존칭'을 듣는다.

'고쳐 줄까, 말까'를 고민한다. 아니, 놔두자. 어차피 알아도 고치지 않을 것이다. 왜 사람 아닌 사물에 존칭을 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그렇게 쓰니까” “건방져 보일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다. '서비스 업종에 특화된 언어'다.

서비스업 종사자만의 일이 아니다. 방송 3년차 쇼호스트 후배는 방송 멘트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는 언어를 구사할까 물었다.

“가져갈 수 있으시고요” “하실 수 있으세요” “안내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모니터링을 한 후 놀랐다. 가져가긴 뭘 가져 가냐.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닌데 가져가다니? 게다가 가져가더라도 '가져가세요, 하세요'라고 말하면 되지 '가져갈 수 있으시고'는 무슨 말이냐고 호되게 야단쳤다. 안내를 하면 했지 안내를 돕는 건 또 뭔 소린지.

소구(訴求)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못된 표현부터 고치라 했다. 후배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내로라하는 선배 쇼호스트도 버젓이 구사하는 존댓말의 오류를 자신만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가실게요”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끌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한민국에서 '~하실게요'라는 이상한 존칭 문화가 유행이다.

'~하실게요'를 분석해 보자. '~하세요'와 '~할게요'의 합성어쯤 되겠다. 요즘 하도 통섭이니 융합이니 둘이 짝을 짓는 게 유행이라지만 묶어서 자연스럽지 않으면 그것은 돌연변이에 불과하다. 듣기 거북하다.

'검은색도 있으시다'고 표현한 백화점 직원의 어법을 '잘못했다'고만 지적할 수는 없다. TV 방송에서까지 '~하실게요' '할 수 있으시고요'를 남발하는데.

'돌연변이 극존칭'의 탄생은 '고객이 왕'이 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사물 존칭'은 한국 기업이 서비스 최고 가치를 '고객 만족'에 두면서 직원에게 극존칭을 쓰도록 교육하며 시작됐다. 실제 서비스업 종사자 가운데에는 사물 존칭이 잘못임을 아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사물 존칭을 쓰지 않을 때 고객에게 듣는 '클레임'이 사물 존칭을 쓸 때보다 훨씬 많아 할 수 없이 쓰게 된다고 고백한다. 국어 문법을 배우는 학생조차 어떤 게 맞는지 질문한다.

'고객은 왕이다'는 기치 아래 대한민국 서비스 산업은 빠르고 친절하게 변모했다. 고객 중심 서비스의 발전 덕에 고객은 정당한 편의를 누리게 됐다.

문제는 잘못된 존칭 남발과 무례한 고객의 등장이다.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다 보니 진짜 왕이 된 줄 착각한 일부 고객이 백화점 직원 뺨을 때리고 삿대질에다 무릎까지 꿇게 한다. '고객을 왕'으로 모신 서비스 정책이 스스로 덫에 걸린 것이다.

기업의 서비스 정책이 '무조건 왕 대접'에서 '합리적 왕'을 모시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태도는 분명하다. 친절하되 오버하지는 말자. “검은색도 있어요. 찾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표현이 불친절한가.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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