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91>사법부 IT혁신가 강민구 법원도서관장

강민구 관장은 “정보기술(IT) 활용은 디지털시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조금만 호기심과 탐구심, 열정을 가지면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강민구 관장은 “정보기술(IT) 활용은 디지털시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조금만 호기심과 탐구심, 열정을 가지면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그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30년 전에 코딩을 배웠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15년 동안 정보기술(IT) 잡지를 모아 6개월마다 모르는 내용을 책으로 엮어 냈다. 그렇게 만든 책 30권을 사법고시 공부하듯 달달 외웠다. IT 고수가 되자 IT를 사법행정에 접목했다.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의 이야기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IT 혁신가, 사법부 IT전문가, 디지털 리더, 강줌마, 바보판사, 스티브 강스 등이다. 최근 그의 강연 동영상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인기다.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의 동영상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클릭 수가 100만을 돌파했다.

강 관장을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4대 놓여 있었다. 아침마다 구글 번역기로 세계 주요 뉴스를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일정은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참모진에게 모두 공개한다. 그는 기자가 자리에 앉자 녹차와 보이차를 내왔다. 차를 마시면서 기자에게 스마트폰으로 에버노트와 음성인식, 번역 시스템을 직접 시연했다. 취재노트를 사용하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 했다.

강 관장은 “IT 활용은 디지털시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조금만 호기심과 탐구심, 열정을 가지면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별칭이 많은데 어느 게 마음에 드는가.

▲바보판사다. 어려운 사건이나 장기 미제 사건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판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강줌마는 요리를 잘해서다. 스티브 강스는 스티브 잡스와 강민구의 합성어다.

-언제부터 IT를 업무에 활용했는가.

▲1988년 3월 법관으로 임관했다. 1985년부터 3년 동안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당시 중형 서버 컴퓨터 단말기로 업무를 처리하면서 코딩을 배웠다. 1988년 6월께 사비로 XT급 조립 PC를 사서 그때부터 사용했다. 정부가 법관에게 PC를 공급한 게 1991년이다. 15년 동안 IT 잡지를 모아 6개월마다 모르는 내용을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로 분류하고 제목을 달아 제본소에 가서 책을 엮어 냈다. 그렇게 만든 책이 30권이다. 그 책을 사법고시 공부하듯 익혔다.

그는 1998년 종합법률정보 1.0을 완성했고, 법률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전자소송을 도입한 주역이다. 한국 사법부 최초로 스마트법정, 예술법정, 음악법정을 도입했다. 2014년 2월에는 창원지방법원장 취임식을 파워포인트로 했다. 지방법원장 시절에 종이 상장을 팝아트 초상화 상장으로 만들었고, IT 집중 교양 강좌를 개설해 화제가 됐다.

- 스마트법원으로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사법과 IT 결합으로 2014년부터 사법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판 업무 조력을 손쉽게 받게 했다. 전국 최고법원으로 부산지법과 창원지법이 소문났다. 스마트법원으로 회의 95%를 없앴다. 외국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오면 부산지법을 성지 순례하듯 꼭 방문한다. 부산지법을 두 번이나 방문한 태국 사법부의 초청으로 오는 4월 12~19일 강연 차 출장 간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예술법정과 음악법정을 한국 사법부에 처음 도입했다. 기존 법정과의 차이는.

▲기존 법정은 벽에 장식이라고는 시계와 달력이 전부다. 그래서 삭막하다. 2012년에 노르웨이 오슬로시 청사에 갔더니 로비 벽 전체가 그림이었다. 미국 샌타바버라 법정은 사방이 벽화다. 독일 법정은 카페 분위기다. 2014년부터 예술법정을 만들었다. 법정에 그림을 걸어 놓아 재판 당사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도록 했다. 현재 예술법정은 12개 단위 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음악법정은 2003년 성남지원 근무 시절에 처음 도입했다. 재판 시작 전에 명상음악을 오전과 오후 1시간씩 법정에 들려줬다. 강금실 당시 법무장관이 이 아이디어를 채택, 전국 교정시설 식사 시간에 음악을 틀어 주는 계기가 됐다.

-한국 사법정보화는 어느 수준인가.

▲한국은 세계 정상급이다. 싱가포르, 호주, 미국 일부 주 등과 어깨를 겨룬다. 등기전산화는 한국이 세계 1위다. 최근 중국의 주요 도시인 항저우, 상하이, 베이징, 창춘 등은 예산을 무한정 투입해 일부는 한국을 앞섰다. 법정에 속기사가 없다. 음성자동입력 시스템이 대신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법관도 위기라는데.

▲자료 정리와 조사 등에 AI를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은 일부 로펌이 도입했다. 그러나 최종 판단을 기계에 위임하는 일은 재판 당사자가 정서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법관 일은 남아 있을 것이다.

-시급한 사법정보화는 무엇인가.

▲급변하는 디지털 추세에 맞게 기존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모든 법정 속기를 자동화하며, 모바일 추세에 능동 대응하는 일 등 많이 있다. 지난해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에서 800쪽의 내부 백서를 작성했고, 이달 중에 제가 위원장인 '사법정보화전략위원회'가 출범하면 모든 것을 종합하고 조율해서 시행하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I와 관련한 법과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입법이 제때 이뤄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이 기술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기는 불가능하다.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대한 입장은.

▲이건 개인 의견이다. 너무 엄격하게 규정해서 빅데이터 산업과 IT 산업 발전에 다소 걸림돌로 작용하는 점이 있다.

-그동안 소통과 나눔은 어떻게 구현했나.

▲소통의 달인(達人)이 되려면 솔선수범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하며, 감성 소통을 해야 한다. 진심은 감동을 만들고 감동은 기적을 낳는다. 30여년 동안 모으고 작성한 모든 자료 파일은 후임자와 기관에 넘겼다. 항상 후임 재판부나 법원장에게 인수인계자료와 디지털 파일을 인계했다. 부산지법을 떠나면서 4526개 파일과 22GB 분량의 데이터 파일을 남겼다.

-단톡방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단톡방을 이용, 사법행정을 개선했다. 단톡방 운영 원칙이 있다. 기관장은 업무 시간에만 글을 적고 구성원은 1년 24시간 마음대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질문에 대한 응답을 실시간으로 할 의무는 없다. 기밀이나 대외비는 올리지 않는다. 단톡방은 부서 칸막이를 없애는 등 엄청난 업무 혁신을 하고 있다. 기관장의 일정은 모두 공개한다. 기관장 일정은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기자에게 스마트폰을 보여 줬다. 단톡방에 '전자신문과 인터뷰 중'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동영상이 인기다. 그동안 외부 강연을 자주 했는가.

▲지방법원장 시절에 월 2회 정도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대학교, 군부대 등에서 강연했다. 인터넷 동영상은 지난 1월 부산지법을 떠나면서 한 고별 강연이다. 500여명이 참석했다. 제목은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다.

'모바일과 SNS 파도 위에서의 생존 전략'이란 부제의 강연은 1시간 40여분짜리다. 강연에서 그는 외국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을 소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은 SW 중심사회라고 강조했다. 에버노트와 음성인식, 번역시스템, 구글 포토 같은 IT 활용법을 쉽게 소개했다. 이 동영상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감사 댓글만 수백개 달렸다.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은 기자에게 스마트폰으로 에버노트와 음식인식, 번역 시스템을 직접 시연했다. 아직도 취재노트를 사용하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은 기자에게 스마트폰으로 에버노트와 음식인식, 번역 시스템을 직접 시연했다. 아직도 취재노트를 사용하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했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어떻게 해야 IT 기기를 잘 활용할 수 있는가.

▲핵심은 호기심과 탐구심, 열정에 달려 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함에는 9배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 고통을 극복할 용기가 필요하다. 인터넷 세상에 '1대 9대 90 법칙'이 있다. 1은 창조자, 9는 펌족, 90은 눈팅족이다. 최소한 펌족은 돼야 한다. 생각을 혁신해야 한다.

그는 지방법원장 재임 기간 3년 동안 스마트폰 기능을 활용해 '부산법원통신'과 '창원 이야기' 등 17권의 책을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 사법정보분과회의에 한국대표단으로 참석, '한국사법정보화 현황과 부산지방법원의 스마트코드 사례'를 발표했다. 5박6일 다녀온 뒤 사흘 만에 300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 주위를 놀라게 했다.

-디지털시대 경쟁력은 IT 활용 능력인가.

▲진정한 경쟁력은 아날로그 지혜다. 즉 아날로그 생각근육이다. 생각근육을 키우려면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 명상과 사고 실험, 고수에게 배워야 한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삶의 정도'다. 이 책을 10번 이상 읽었다.

-재임 중에 이루고 싶은 일은.

▲사법정보화 고도화, 법관 타이핑 해방,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 생성과 유통이다.

-디지털 문맹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코딩을 몰라도 누구나 스마트폰을 잘 사용할 수 있다. 조금만 호기심과 탐구심, 열정을 가지면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년층일수록 더 노력하고 연구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에게도 미치는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취미는 독서와 등산, 사진, 다도다.

강 관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법연수원 14기로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시작해 대법원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으로 일했다. 저서로 '함께하는 법정' '손해배상 소송실무(8인 공저)' '인터넷 그 길을 묻다(40인 공저, 총괄기획)' 등 다수가 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사진반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 작가 수준이다. 격무로 나빠진 건강을 108배로 되찾았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