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93> “후보자 행적과 주변 인사를 보라”김병섭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소장

김병섭 소장은 “차기 대통령의 주요 덕목은 비전 제시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라면서 “유권자들이 여야 대선 후보자들의 행적과 주변 사람들을 보고 선택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병섭 소장은 “차기 대통령의 주요 덕목은 비전 제시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라면서 “유권자들이 여야 대선 후보자들의 행적과 주변 사람들을 보고 선택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은 헌정사에서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될 불행한 일이다. 개인을 떠나 국가의 품격 추락이고 불명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5월 9일로 다가왔다. 아픔과 갈등을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개혁과 통합의 국가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할 새로운 출발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은 앞 다퉈 각종 공약을 내놓으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하나같이 자신이 국정을 담당할 적임자라고 외친다.

그러나 차기 정부 앞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경제, 국방, 외교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국가 위기와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의 역량을 한 곳으로 결집시켜서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할 책무가 차기 대통령의 어깨에 놓여 있다. 유권자들은 리더십이 어떠한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야 '국민 행복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김병섭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을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 301호실에서 만났다. 이른바 장미대선에서 선출해야 할 차기 대통령의 덕목과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김 소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장,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과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다. 연구실은 각종 책들로 꽉 찼고, 책상과 탁자 위에도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제목을 보니 대통령의 자격을 비롯해 강희제평전, 사기열전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책과 중국 고전이 많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는 정부 조직 개편은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정부 조직에 손대지 않는 게 좋다. 대통령 당선인이 5년 안에 구체적으로 꼭 이 일을 해야겠다고 정했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존 조직을 바꾸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하는 바람직하다. 조직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려면 대통령이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이 뚜렷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뭘 달성할 것인지를 정한 다음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개편에 따르는 이익과 비용을 고려할 때 기존 조직을 그대로 두는 게 유익하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경우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기능을 합쳐 출범했다. 당초 기대보다 시너지 효과가 별로 없었다. 개별 조직 존재가 더 좋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개편 논의가 활발하다.

▲미래부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논의도 개편 이익과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굳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로 개편해야 한다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ICT 기반의 정보통신부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말하는데 그런 주장은 한편은 맞고 다른 한편은 맞지 않다. 현행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권력의 틀을 바꾼다고 해서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겠는가. 현행 제도 아래에서의 대통령은 대 국회 관계에서는 힘이 별로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 가운데 그 대상인 국회의 다수당 대표가 권력을 나눠 갖는 정부 형태를 국민이 용납할지는 의문이다. 개헌 논의에 앞서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 급선무다. 제왕적 대통령은 대 행정부 관계에서 나타난다. 대통령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제에서도 공직자가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업무상의 독립성이 필요하다. 주요 산하 공공기관의 수장도 청문회를 거쳐서 임명해야 한다. 그 대신 임기는 보장해야 한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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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뭔가.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당의 실력자가 정한 비례대표 순번대로 국회에 진입하는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고, 해당 분야의 대표성이 없어도 앞 순번을 받으면 무조건 국회의원이 된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이 정당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인물을 비례대표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내각제나 분권형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후 개헌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점은.

▲흔히 불통(不通)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문제지만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가 참극을 불렀다.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은 서명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백성은 항상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진 자를 그리워하는'(民罔常懷懷于有仁) 법인데 박 전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지지가 영원한 것으로 오판(誤判)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국민이 따라주겠지'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하늘이나 국민은 절대 그렇지 않다. 지지도는 바람과 같아서 오래 가지 않는다. 원칙과 신뢰를 기치로 내건 박 전 대통령이 민심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파면당하고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통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그런 중요한 정치 자산을 활용하지 못했다. 잘했으면 위대한 '통일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지지층과 그런 지원 세력도 있었다. 지난날 방북해서 김정일 전 북한 위원장도 만났다. '통일대박'이란 말도 처음 사용했다. 그런 게 국가 비전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통일대박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난관도 뛰어넘었어야 했다. 그 반대로 간 박 전 대통령 처지가 안타깝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통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 있다면.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백성은 '나를 어루만져 주면 임금이고 나를 학대하면 원수'(撫我則后, 虐我則〃)로 생각한다. 그러니 지도자는 늘 국민에게 정성을 다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국가를 끌고 갈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공자는 '대학'에서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즉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이 바로 그것이다. 공자 말씀은 차기 대통령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구체적인 국정 목표와 비전을 국민에게 내놔야 한다. 5년 재임 중에 어떤 나라를 만들지 설계도를 제시해야 한다. 막연한 공약(公約)을 남발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꼭 추진할 비전을 제시하고, 달성 과정에서 장애 요인은 무엇이고 장애는 어떻게 극복할지를 밝혀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도 잘살아 보자'며 성장이란 화두를 제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 없는 사회', 즉 공정사회 메시지를 던졌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를 제시하고, 그 일에 지극 정성을 다해야 한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다. 5년 안에 모든 걸 다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眼目)이 있어야 한다. 권력자 주위에는 불나방이 많다. 그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사익과 권력을 탐하는 인사들이 주변에 넘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데 안타깝게도 박 전 대통령은 인사(人事)를 잘못해서 망사(亡事)가 됐다. 셋째는 자신을 닦아야 한다. 거대한 세상의 변화를 읽고 이를 비전으로 제시하는 능력은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신하와 간신과 참신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쉽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의정심으로 수신(修身)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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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게 후보자의 됨됨이다. 공약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보자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를 알려면 그가 살아 온 발자취를 살펴봐야 한다. 인물을 평가하는 건 그 사람의 지난 행적이다. 학력이나 경력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후보자의 주변 인사들을 살펴봐야 한다. 옛말에 '욕식기인 선시기우'(欲識其人 先視其友)라는 게 있다. 그 사람을 알고자 하면 그 친구를 보라는 의미다. 그런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출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좌우명과 취미는.

▲'사랑'이다. 우리 집 가훈이기도 한다. 취미는 여행이다. 시간 날 때마다 아내와 국내외 여행을 다닌다. 국내 트레킹 코스로는 경북 울진 덕구계곡을 강력 추천한다. 비용도 저렴하다. 외국은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랜드캐니언이 트레킹 코스로 좋다.

김 소장은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목원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과 행정개혁위원, 행정자치부 정부조직진단 변화관리자문위원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1년 8개월 동안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과 한국행정학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항해 시대의 국가 지도자 이순신' '우리 복지국가의 역사적 변화와 전망' '편견과 오류 줄이기' 등 다수가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