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인의학과 전기차

[기고]노인의학과 전기차

노인의학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들은 흔히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는 개개인의 질병 위주로 치료하는 일반 성인과 달리 생리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노인은 질병과 약물, 약물과 약물끼리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 일어나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치료법이나 약물 간소화만으로 환자의 증상을 낫게 해 주는 경우가 흔하다. 힘이 빠지고 의식이 처져서 응급실에 온 노인에게 매일 복용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약을 정리만 해 줘도 기력이 나아지는 일이 많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면 '투입과 산출'이라는 근대적 상식과는 달리 왜 간결한 것이 때로는 더 나은지를 느낄 수 있다.

노인의학에서 간결함의 아름다움은 약물 개수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회복하고 있는 환자를 독려해서 침상에 누워 있는 기간을 줄이고, 몸에 달려 있는 여러 가지 주사와 배액관도 꼭 필요한 것 말고는 없앤다. 그렇게 해서 입원 기간을 줄이다 보면 결국 의료비용을 낮추는 데도 환자는 더 나은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을 얻어서 요양병원 대신 집으로 퇴원하게 된다. 이러한 간결함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와 가족은 돌봄의 노고와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런 혜택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노인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의료시스템을 실현한다.

노인의학은 전기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간결함과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뭇 사람은 뚱딴지같은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차 상식에 있는 것들을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선순환을 반복하며 간결해졌다.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유지 관리가 쉬울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살아가는 방식마저 바꿔 놓고 있다. 이동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물건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결국 증가하는 고령 인구와 급증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기존의 질병 중심 의료에서 미래의 지속 가능한 보건 시스템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노인의학이 제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료통'이 필요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충전이 되어 200㎞ 이상 달릴 수 있는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굳이 연료를 채우러 차를 몰고 가지 않아도 되고, 매달 수십만원의 여윳돈까지 생긴다. 엔진도 없다. 수만㎞를 주행했는데 소모품 교환은 에어컨 필터, 와이퍼 고무, 워셔액뿐이다. 배기가스가 없어서 공회전 문제가 없으니 겨울에는 히터,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 수 있다. 차 안에서 맘껏 악기 연습도, 휴식도 할 수 있다. 마찰 브레이크를 거의 쓰지 않고 회생제동을 이용해 차를 세우니 분진이 없어 세차를 덜 하게 된다. 이처럼 전기차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경험하는 삶을 크게 바꿔 놓는다.

자동차 생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져 어떻게 오는 것인가를 저절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멀리서 실어 온 석탄이나 가스로 전기를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서 집에 태양광 패널을 달게 된다. 자연스레 탄소 발자국 개념을 익히게 돼 음식도, 폐기물도 전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도 변화시켜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더 빠르게 높아지게 된다.

흥미롭게도 노인의학과 전기차는 비슷한 종류의 걸림돌을 맞닥뜨리곤 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지레 짐작을 바탕으로 한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에서는 두 패러다임 모두 일정한 저변이 형성될 때까지 느리게 성장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모험을 두려워하지만 바로 옆 사람보다 뒤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두 패러다임 모두 가파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짙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그리한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노인의학과 전기차가 일상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희원 KAIST 의과학대학원 내과전문의 dr.ecst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