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ETRI에는 '새통사'가 있다

[미래포럼]ETRI에는 '새통사'가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는 '새통사'란 연구 장터가 열린다. '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함의를 품고 있는 장터의 모임(지난 4월 7일)이 벌써 83차이니 이젠 상당한 관록이 축적됐다.

처음에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초석을 일군 전전자교환기개발사업(TDX)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프로젝트의 뒤를 잇는 '새로운 네트워크와 통신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물꼬를 텄다. 그러나 논의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융·복합되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에너지를 전반적으로 고찰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외연을 활짝 열어 보기로 했다. 연분홍빛 결기로 넘치는 새통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자유롭고 활달한 접근을 한다.

첫째로 발표 주제에 구애 받지 않는다. 다만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공간을 이루듯 생각들의 부딪힘 속에서 새 희망을 찾는다'라는 모임 취지에 얼추 맞는다면 무슨 내용이든 개의치 않는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양자 컴퓨팅,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프랑스 디지털 공화국법 등 지금까지 논의의 폭은 무척 다양하고 넓다.

둘째는 발표하고 싶은 사람이 주장하고 싶은 의제로 모여드는 열린 마당이다. 와글거리고 흥정하는 시장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ETRI 연구원과 OB를 중심으로 발표가 이뤄졌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관심 있는 교수, 작가, 벤처인, 대덕연구단지의 출연연구소, 지역사회 시민단체, 대덕넷 등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셋째로 발표 및 토론도 2시간 이상 넉넉하게 안겨준다. 격심한 논쟁도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격식 또한 구애받지 않는다. 진짜 토론은 저녁식사 시간에 이어진다. 간단한 반주를 곁들이면서 치열하게 토론한다. 토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근처 카페나 와인 바로 옮겨 새벽까지 끝장을 낸다.

넷째로 '성글게 하여 통하게 한다'는 소통이라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해 가고 있다. 설익은 상태라 하더라도 공유하고 싶은 연구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고 주장하고 싶은 이슈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차라리 연구에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싶은 때 들르는 연구자 주막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과정에서 ETRI에는 새통사와 섶다리처럼 엮어지는 자발적 연구 소모임(AOC)이 40여개나 생겨났다. AOC는 개인의 아이디어를 난전에 벌여 놓고 다른 연구자의 지혜를 엮는 연구 텃밭을 가꾸는 것이 목적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생각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착상을 얻고 영감의 싹을 틔워 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 모임을 거듭하면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전략 프레임'으로 '인텔리전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IDX)'이라는 콘셉트를 잉태할 수 있었다. 국가의 모든 자원이 네트워크에 연결되고(초연결), 그곳에 지능이 전기처럼 흐르게 하는(초지능) IDX 시스템의 재발견으로 대한민국을 고도지능사회로 전환시키자는 연구자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창발적 신작로를 내기까지는 한 사람의 정열적인 소통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그 주인공은 ETRI커뮤니케이션 전략부장인 이순석 박사다. 그는 오일장 같은 연구실 생태계를 위한 선머슴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발표자 섭외, 음료수 등 발표 준비, 정갈한 식당 물색에서 이동 교통편 제공까지 풀 콘시어지 서비스를 도맡아 해낸다. 주말에는 발표와 토론의 성과를 담은 감동적인 후기까지 전 직원과 참석자에게 뿌려 주면서 연구자의 파릇파릇한 영혼을 일렁이게 한다. ETRI에는 새통사가 있다. 그리고 새통사는 '4차 산업혁명 이노베이터'를 위한 열린 멍석이 될 것이다.

하원규 초빙연구원/ ETRI 네트워크연구본부(wgha@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