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선진국과 비교해도 과도한 화학물질 규제법 개정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도입하려는 '화학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는 해외 선진국보다 과도한 규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화학물질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발효된 상황이어서 '삼중 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MSDS 기재 기준은 한국이 가장 엄격하다.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는 유해성이 인정된 물질만 MSDS에 기재한다. 우리나라는 유해성 물질 외 비유해성 물질도 MSDS에 적도록 강제하고 있다. EU와 캐나다는 유해 물질이라 하더라도 사전심사제도를 통해 구성 물질과 함유량을 가릴 수 있다.

미국은 사전심사제도도 없다. 사업자가 영업 비밀이라고 판단하면 스스로 블라인드 처리가 가능하다. 한국은 유해 물질의 경우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이를 가리지 못하게 법으로 강제했다. 사전심사제도는 비유해 물질도 기업 스스로 영업 비밀을 판단하지 말고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받으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영업 비밀을 판단하는 근거는 부정경쟁방지법에 있다.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상당한 노력으로 비밀이 유지된 생산·판매·영업 정보가 영업 비밀로 정의된다.

이 판단을 심의위에서 맡으면 정보 유출 우려가 커진다. 지금 발의된 법 개정안에 따르면 심의위 구성은 노사 동수로 이뤄지기 때문에 민간 업체의 핵심 정보가 환경노동 단체로 흘러들어가 제3자에게 유출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강병원 더민주 의원은 얼마 전 법원이 영업 비밀로 판단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장 보고서 자료를 언론에 통째로 넘겼다는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러한 우려가 불거지면 소량만 수입해 사용하는 핵심 첨가 물질의 경우 해외 화학물질 업체가 판매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국에서 이를 문제 삼으면 국제 무역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화학물질을 활용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들어 파는 국내 기업이 손해를 본다. 이들 역시 핵심 공정에서 사용되는 물질명이 노출됐을 때 큰 피해를 본다.

해외 화학물질 업체 고위 관계자는 “심의에서 영업 비밀로 인정됐다 하더라도 최장 9년 이후에는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은 그야말로 독소 규제”라면서 “사기업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연구개발(R&D) 결과물을 정부가 법으로 공개하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성 없는 법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MSDS에 기재되는 물질 항목만 63만개다. 새롭게 추가되는 MSDS는 매년 6만개에 이른다. 기존의 63만개는 고사하고 15명 혹은 30명의 심의위원이 매년 평균 6만개의 화학물질 영업 비밀 심사를 소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당 10만~50만원(유럽 기준)의 심사 수수료를 적용할 경우 천문학 규모의 비용도 들어간다.

김충모 고용노동부 화학사고예방과장은 “입법 과정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개정안 발의 의원, 각 기업 이해 당사자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해외 사례도 참조해 합리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