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 "R&D 방향, IP 빅데이터 분석해 정한다"

사진=박지호 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 기자 jihopress@etnews.com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산업 방향은 예측할 수 있다. 3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전략 방향을 결정할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 바로 지식재산(IP)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IP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R&D 투자 중복여부, 기술 방향성, 시장 경쟁력 등을 점검한다. 주요 선진국과 글로벌 대기업은 이미 IP 빅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산업에 투자해야 하는지,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 결정하고 기술 선점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흐름에 맞춰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직에 백만기 변리사를 지난 10일 위촉했다.

백만기 신임 단장은 향후 4차 산업혁명 파고에 맞서 IP와 산업기술 R&D를 연계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R&D를 다 끝내고 특허를 출원하는 게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특허 출원 방향을 설정하고 획득하게 한다. R&D와 IP 연계, 빅데이터 분석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백만기 신임 R&D전략기획단장을 만나 앞으로 계획과 포부를 들었다.

-단장직을 수락한 배경과 포부는 무엇인가.

▲정부에서 21년 간 산업기술과 특허정책을 담당한 후 이직을 결심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민간 법률과 컨설팅 시장에서 전문가로 18년 간 일했다. 민관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해 단장직을 수락했다. 정부와 민간을 잘 아는 사람의 장점을 발휘하려 한다. 민간에서 일해 보니 정부 자금 1억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하게 됐다. 산업부 R&D 자금 3조원이 30조원 이상 효과가 나도록 전략적 접근을 해보고 싶다.

-특허청과 산업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정책, 남긴 성과를 꼽는다면.

▲국제특허연수원 설립 등 각종 특허 행정 근대화 사업에 참여해 우리나라 특허청이 'IP5'로 불리는 세계 5대 특허청 위상을 갖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산업부에서 반도체 산업과장으로 한미통상마찰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후 반도체가 핵심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

산업기술 주무 국·과장 시절은 산업 정책이 기술혁신 중심으로 변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산업기술 기반조성법' 제정 등 각종 법제 정비와 제1차 산업기술혁신 5개년 계획 수립, 전국 테크노파크 건설, 산업기술대학 설립, 벤처기업협회 창립지원 등 산업기술혁신을 위한 하부구조를 단단히 했다.

-최근 공급과잉 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주력 산업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진단이 많다.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나.

▲경제 순환 사이클에 따라 공급과잉 현상이 생기고 중국의 부상이 여러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산업의 기술혁신 속도가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쟁자 진입이 쉽지 않을 정도로 빠른 혁신 속도를 내서 국내 기업이 놀라운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조선산업 등 다른 주력 사업은 경쟁국과 차별화되는 기술혁신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것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산업의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승자독식 구조'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데 기술혁신 속도가 뒤쳐지면 낙오될 수밖에 없다.

-산업기술국장으로 근무하던 1990년대 말과 현재 산업기술 R&D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1990년대 국내 산업기술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창조적 제품 개발보다 세상에 나와 있는 제품을 개량해 저가 생산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정부 R&D 프로그램도 특허같은 무형자산을 창출하는 선진국형 R&D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제는 국내 R&D 투자 규모도 커져서 1인당 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선두권이 됐다. 하지만 창조적 결과물은 미흡한 수준이다. 시장선도자(first mover)로서 성과가 나와야 한다. 정부는 기술개발 성공 확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장실패 가능성이 큰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핵심기술 분야를 잘 선정해 가치 있는 무형자산을 많이 만들고 정부 자금으로 산·학·연이 연계되는 건강한 R&D와 사업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기술 R&D의 과제는 무엇인가.

▲국내 R&D 투자가 증가하면서 특허 등 IP의 양적 증가는 상당부분 달성했다. 아직 미래를 대비하는 핵심 원천기술 개발은 미진하고 등록된 특허도 질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다. 해외에 상품을 수출하면서 특허소송이 걸리면 정작 자기가 출원해 확보한 특허로는 상대를 공략하는 무기가 되지 못해 타사 특허를 매입해야만 대응이 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와 민간 모두 R&D의 양적 확대에 치중하기 보다는 강력한 특허권을 확보하는 등 성과 위주로 전략적 투자를 해나가야 한다.

-국내 R&D 생태계의 문제점을 짚어달라.

▲정부 R&D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세분화됐다. 핵심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데 구조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 R&D 프로그램 성공률이 너무 높다. 과연 그게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었을까. 위험감수(risk taking)를 핵심 원천 쪽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이 자기 자본으로 하기 어려운 원천기술 개발에 국가 R&D 자금이 쓰여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가시적 성과에 급급하면 정부 자금이 충분히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이 시대적 과제다. 정책 방향은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나.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인으로 모든 제조업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을 연결하고 지능화할 것이다. 결국 경제 혁신 생태계가 완전히 새롭게 구축되는데 중요한 것은 신산업이 커 나갈 수 있도록 적극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핵심 원천기술을 집중 개발해야 한다. R&D 전략기획단은 4차 산업혁명 기조에 맞춰 산업기술 R&D 프로그램을 새롭게 설계할 것이다.

-R&D 전략과 IP를 어떻게 연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년에 새롭게 창출되는 특허권이 세계적으로 200만건이 넘는다. IP 빅데이터는 R&D에 필요한 기술정보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국제기구의 분석이 있다. 최근에는 IP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해 주는 소프트웨어 툴이 시장에 많이 나왔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IP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R&D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국내 대기업도 IP 빅데이터 활용을 본격화하는 단계다. 정부도 R&D 기획 단계에서 지식재산전략과 연계해 추진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R&D 결과물을 특허로 등록하는 소극적 방식으로는 미흡하다. 강력한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는 산업기술 R&D 전략이 필수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R&D 과제 선정 단계부터 빅데이터 분석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하려는 분야에 있는 주요 기업과 다른 나라가 어느 기술분야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들이 주로 발명하는 특허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향성은 빅데이터 분석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그걸 파악해보면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방향이 중복인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갖고 우리의 전략을 짜고 정책에도 반영해야 한다. 또 데이터를 바탕으로 R&D 방향을 설정하고 초기단계부터 특허를 낼 수 있게 병행해야 한다. 산업기술은 특히 IP에 근거한 R&D 전략이 정말 중요하다.

-앞으로 R&D전략기획단을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지.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이나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기업이 자기자본으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정부 지원을 늘려 '강시 기업'을 만들면 안 된다. 정부는 성공률이 낮거나 위험 부담이 커서 개인이나 민간이 투자를 기피하고 실패가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 R&D를 집중해야 한다. 정부 자금은 공공재 성격인 만큼 핵심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타부처 사업과 중복을 피하고 상호 보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R&D 재정지원은 무작정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산업발전전략과 국가 전체 R&D는 상호 연계 추진돼야 한다.

-차기 정부 출범이 눈앞에 다가왔다. 국가 R&D 정책에 꼭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과거 정부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부조직 개편이 지나치게 자주 있었다. 차기 정부에서는 조금 안정적인 환경에서 국가 R&D 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 조직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기술관련 정부 관료와 R&D 관리기관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하도록 전문성을 유지하게 했으면 한다. 부처 간 역할 분담도 명확히 해 갈등이 최소화되도록 정비되길 바란다.

대담=양종석 산업정책부 세종팀장

정리=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