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계, "과학정책 패러다임 전환기, 예산권 갖는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과학계가 차기 정부에 국가 연구개발(R&D), 과학기술 정책 전반을 아우르면서 예산권까지 갖는 통합 컨트롤타워 설치를 요구했다. 기존의 '빠른 추격자' 전략을 넘어 장기 정책을 수립하려면 거버넌스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는 26일 서울시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 혁신체계' 주제로 열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원탁토론회에 참석,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림원 정책 제안을 모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효과적 R&D 투자로 과학기술 역량 강화, 탈추격 시대 국가혁신시스템 구축, 성장 동력 창출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3대 핵심 가치와 7대 추진 전략이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한림원탁토론회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한림원탁토론회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경제·과학기술 환경 변화에 따라 탈추격형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정부도 유기적 통합 조직 체계를 만들어 단기 성과보다 장기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아우르는 통합 조직 설치를 제안했다. 통합 조직이 예산 배분 권한을 갖고 원칙·전략을 설정, 투자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에도 통합 조직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예산을 배분하고 총괄하는 기능은 없었다.

김 교수가 제안한 것은 정책 수립, 예산 배분의 통합 조정 모델이다. 세부 정책 수립, 사업 집행은 각 부처로 이관한다. 장기 전략 수립, 자원 배분은 통합 조직으로 일원화한다. 정책 연속성과 안정성, 시행착오 학습 부족이 현 체계의 최대 문제라는 지적이다.

과학기술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융합 연구, 탈추격 혁신이 필요한데 이때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를 보완하려면 정책 수립, 실행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학습할 체계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장기 정책 수립, 집행, 평가,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높은 수준의 통합 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26일 한림원탁토론회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26일 한림원탁토론회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다.

과학계의 제안은 4차 산업혁명과 융·복합 연구에 대비한 우리나라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5년마다 바뀌는 정책으로는 지속성이 없고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성공적인 정책은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정책”이라면서 “그런 정책은 철학이 분명할 때, 공감이 클 때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민·관이 협력해서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플래닝 타워' 설치를 주장했다. 하향식(톱다운)에서 수평 협력으로 거버넌스 틀을 바꿔야 지속 가능한 장기 계획이 나온다고 봤다.

민 교수는 “수평적으로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모여 고민하는 '플래닝 타워'로 거버넌스 개념을 새로 잡고, 정부는 그걸 집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일하는 사람과 방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조직 개편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10년 단위의 플래닝 타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들은 국가 R&D의 외형 성장이 아닌 내실 성장,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역할 재정립, 평가 제도 개선 등 의견을 냈다. 연구자 스스로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무환 포항공대 교수는 “연구자는 암묵으로 만들어진 연구의 울타리를 과감히 제거하고 창의 융합 연구를 하자”면서 “도덕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책임도 우리가 지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