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만들어진 망중립성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2003년이다.

[전문기자칼럼]만들어진 망중립성

33세의 천재 학자인 팀 우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망중립성, 브로드밴드 차별' 논문에서 최초로 망중립성 원칙을 제안했다.

“네트워크 사업자와 정부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사용자와 내용, 플랫폼, 전송 방식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2개 문장은 인터넷, 콘텐츠, 포털 기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인터넷이 모든 서비스를 집어삼키던 시기였다.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대여 업체이던 넷플릭스는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로 변신하고 있었다. 구글은 유튜브 인수를 진행했다. 서비스 확장 과정에서 과도한 트래픽을 발생, 통신사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망중립성을 앞세워 콘텐츠의 자유로운 전송을 요구했다. 이를 통신사는 받아들여야 했다.

망중립성은 이론으로 출발했지만 법에 준하는 지위까지 확보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오픈 인터넷'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2015년에는 '망중립성 규칙'을 제정해 사실상 법제화했다. 우리 정부도 2013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이 같은 역사를 볼 때 망중립성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분명하다. 2000년대 초 통신사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려가며 성장할 때 닷컴 등 벤처기업은 통신사가 구축한 망을 타고 싹을 틔우고 있었다. 새로운 시장과 경제 주체를 등장시키기 위해 인터넷 사업자가 안정 성장을 할 제도 기반이 필요했다. 공룡 네트워크 사업자로부터 싹이 꺾이지 않도록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

망중립성 원칙 자체는 1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 의료 등 산업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4차 산업혁명의 주력군으로 떠올랐다. ICT의 동맥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데 차별받지 않고, 안정 성장을 할 기반이 여전히 필요하다.

공정 거래 원칙은 살리되 변화된 시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통신사를 능가하는 공룡으로 성장한 거대 포털 기업에까지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망중립성이 사전에 등장한지 14년 만에 시장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구글의 시가 총액은 6100억달러로 버라이즌의 1930억달러를 약 3배 앞섰다. 네이버 시가 총액은 26조원으로 19조원의 SK텔레콤을 앞섰다.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해외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로 통신사에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고 국내 규제도 받지 않는 구글, 페이스북을 망중립성 원칙과 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사회 논의가 필요하다.

망중립성의 역사와 본질에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팀 우는 인터넷 산업이 불붙기 시작한 2003년 당시 시장 요구를 읽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경제 원칙으로 망중립성을 제시했다. 경제 상황이 변했다면 그에 걸맞은 수정과 보완도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 후보가 망중립성에 관심을 기울여서 강화 또는 완화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일단은 긍정적이다. ICT 생태계를 구성하는 네트워크 사업자와 인터넷사업자, 전문가 집단이 새로운 망중립성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