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18>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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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나 자식을 멍이 들거나 피가 날 정도까지 때려도 폭력 행위가 1년에 1회를 넘지 않고,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15일 구류나 벌금 처분에 그친다. 러시아 이야기다. 석 달 전인 지난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때리기법'에 서명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자녀와 배우자를 안 죽을 만큼 때려도 되는 나라'가 합법화될 전망이다.

가족 간에 벌어진 폭력이 모르는 사람을 때렸을 때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다. 국가가 가정사에 간섭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던 그다.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더니 대놓고 때리는 걸 방치하겠다는 거다. 그 나라에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뜻'의 속담도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폭력의 DNA가 '원초적 본능'인가 보다.

P선배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얼마 후 남편과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폭력이었다. 명문대 출신 인재인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부부였다. 남편은 명문사립대 교수다.

선배는 결혼 전에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결혼 후에 유학의 꿈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결혼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선배의 유학길은 녹록지 않았다. 남편이 교환교수로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선배는 자신도 공부를 계속 하겠다고 우겼다. 남편과 시댁에서는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학업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공부를 계속 하기로 결심한 것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여러 번 이혼하겠다고 친정 부모께 말을 했지만 여자의 삶이 다 그런 거라며 이혼을 반대했다. 그때까지도 남편한테 맞고 산다는 얘기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그녀는 병원에 실려 갔다. 발이 부러진 것이다. 그때서야 친정 부모는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맞고 살았음을 알았다. 선배는 영화 '적과의 동침'처럼 남편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경제 독립을 하는 것만이 이혼녀가 살 길이라고 여겼다. 맞을수록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imagetoday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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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코언 영국 런던대 정경대학(LSE) 사회과학 명예교수는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서 가정 폭력은 일탈 현상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폭력 행위를 장기로 하는 가해자는 보통 때는 멀쩡하다가 술을 마시면, 화가 나면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는 말로 가정 폭력을 정당화한다. 처음에 막지 못하면 가정 폭력은 '정당'하게 시스템화 된다.

가정 폭력이 위험한 이유는 학습되기 때문이다. 맞고 자란 자녀의 가슴속엔 분노가 잉태된다. 분노는 행동 조절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분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할 가정은 다시 붕괴된다.

러시아의 '때리기법'을 발의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의원이다. 그녀는 “부모의 힘과 권위로 뒷받침된 러시아 가족 관계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정은 국가의 축소판이다. 힘으로 국가 권위를 지키겠다는 나라다.

국가가 가정 폭력에 침묵한다면 인간의 행복권은 근거를 잃는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방관해선 안 된다. 나쁜 관습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이된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사회에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폭력은 가장 잔인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한 여배우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