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공짜로 쓰겠다는 페이스북···피해는 소비자 몫

통신망 공짜로 쓰겠다는 페이스북···피해는 소비자 몫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에 캐시서버 무상 설치를 요구, 국내 통신사와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 간 트래픽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트래픽이 급증하는데도 이용료를 거의 받지 못하는 통신사 불만이 폭발했다. 속도가 느려지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민간 사업자 간 갈등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본지 5월 1일자 6면, 2일자 8면, 8일자 9면 참조〉

◇페이스북 “트래픽 비용 못내”

1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지난해 말 SK브로드밴드에 한국 내 '캐시서버'를 무료로 설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캐시서버를 설치하려면 SK브로드밴드와 장비 연동이 필요한 데, 이를 무상으로 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캐시서버란 자주 이용하는 정보를 저장해둠으로써 전송 효율화를 꾀하는 장치다. 한국 내 이용자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것 자체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문제는 캐시서버를 설치하면서 페이스북 트래픽이 늘고 통신사는 통신망 과부하 부담이 불가피하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4월 한국 모바일 SNS 앱 사용시간은 페이스북이 56억분으로 2위 밴드(20억분)를 압도적 차로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SK브로드밴드는 캐시서버를 설치하되 트래픽을 정산해 통신망 이용료를 내라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페이스북이 거부하면서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한 상황이다.

트래픽 급증은 결국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 동영상 시청은 90% 이상이 와이파이, 즉 유선인터넷망을 통해 이뤄진다. 트래픽이 늘어나면 통신사는 통신망을 증설해야 한다. 하지만 유선인터넷은 정액제라 트래픽이 늘어도 비용을 회수할 길이 제한적이다.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올릴 수 있는 무선인터넷과 다르다.

국내외 업체 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업체는 통신사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입주해 연간 수십억~수백억원을 낸다. 페이스북은 현재 SK브로드밴드 통신망을 이용하면서도 이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재주는 한국 통신사가, 돈은 글로벌 사업자가?

SK브로드밴드는 페이스북 탓에 국제회선을 증설해야 할 판이다. 페이스북 접속포인트(POP)가 홍콩에 있는데 페이스북이 한국-홍콩 구간 트래픽 과부하를 일으킨 것이다. SK브로드밴드에 가입한 한국 페이스북 이용자가 느린 속도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한국-홍콩 구간 국제회선 긴급 증설에 나섰다.

통신 업계는 이처럼 통신사가 망 증설에 허덕이고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만 떼돈을 버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이들은 '유한회사'라는 편법을 사용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페이스북이 연간 한국에서 1000억원 이상 이익을 남길 것으로 추정했다.

SK브로드밴드-페이스북 트래픽 갈등은 시작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동영상은 물론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콘텐츠가 확산되면 트래픽이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에 이어 LG유플러스도 페이스북과 캐시서버 갈등을 겪고 있다. KT도 내년 중 페이스북과 계약이 종료돼 갈등이 재현될 여지가 있다. 갈등이 심화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 업계는 민간사업자 간 다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경 간 공급'이라는 틀 안에서 문제를 다룰 기본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는 공급 형태상 '국경 간 공급'에 해당하며 통신서비스 분류상으로는 '부가통신사업'에 해당한다. 국경 간 공급에서 부가통신사업은 별도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최소한의 규제가 가능하도록 법적 지위를 신설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 트래픽 급증은 통신사는 물론 이용자 피해까지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라면서 “이를 방치하지 말고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 법적 지위 신설 등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