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리퍼폰, 삼성전자·애플 엇갈린 행보

애플은 미국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퍼 아이폰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새제품보다 15% 저렴하다.
애플은 미국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퍼 아이폰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새제품보다 15% 저렴하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은 '리퍼비시 스마트폰'(리퍼폰)과 관련해 상반된 행보를 지속했다.

애플은 미국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퍼 아이폰'을 판매한다. 기존에는 고장 난 아이폰 부품 수리를 원하는 고객이 리퍼폰 제공 대상이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리퍼폰도 새 아이폰처럼 일반 판매 방식으로 전환했다.

삼성전자는 리퍼폰을 공식 판매한 사례가 전무하다. 북미 법인 홈페이지에서 중고(Pre-Owned) 갤럭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게 전부다. 삼성전자는 리퍼폰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한 번 사용한 중고품을 새 것처럼 만들어 재출시하는 방식은 리퍼폰과 유사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이동통신사가 판매하는 갤럭시 리퍼폰 역시 자사가 공식 출시한 리퍼폰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갤럭시노트7이 삼성전자 1호 공식 리퍼폰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리퍼폰 판매에 적극인 반면에 삼성전자가 소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스마트폰 출시 라인업'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스마트폰은 총 31개다. 같은 기간에 애플이 출시한 스마트폰은 아이폰SE, 아이폰7, 아이폰7 플러스 등 3개에 불과하다.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10배 이상 많은 신제품을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고가형 스마트폰 라인업에 갤럭시S, 갤럭시노트 △중가형 스마트폰 라인업에 갤럭시A △저가형 스마트폰 라인업에 갤럭시J, 갤럭시온 시리즈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 경제력, 소비성향 등에 따라 각각의 시장에 맞는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스마트폰 라인업을 갖췄다.

새 제품 판매에 집중해야 하는 삼성전자가 '리퍼폰' 판매에 집중할 경우 자기 잠식(카니발리제이션)이 불가피하다. 80만원대에 판매하던 갤럭시S7이 50만원대 리퍼폰으로 팔리면 같은 가격대의 갤럭시A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애플은 매년 가을 고급형 아이폰을 선보인다. 아이폰SE 등 중저가형 모델도 출시하지만 꾸준히 출시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가격대의 아이폰을 출시하지 않는 애플은 리퍼폰이 단출한 스마트폰 라인업을 방어할 수 있는 카드다. 중저가폰 시장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리퍼폰을 찾는 수요가 높다는 점도 주효했다.

전문가는 “리퍼폰은 재고를 소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판매할 수 있는 스마트폰 종류가 한정돼 있을 때 신흥시장 등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면서 “애플이 리퍼 아이폰 판매를 공식화한 배경에도 이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