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업부의 '분리 증후군'

[데스크라인]산업부의 '분리 증후군'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간부 A와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장소에 들어선 A가 보고서를 불쑥 내밀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에서 지경부로 이관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과 기존의 산업 정책 간 시너지 효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A는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ICT 정책은 전체 산업 차원에서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A는 점심식사 후 당시 유력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ICT 정책을 담당하는 B를 만나 같은 내용을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하루 전날 오후에 B를 만난 터여서 A가 걱정됐다. B는 지경부에서 ICT를 분리시켜서 독립 부서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A와 B의 만남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이후 대선에서 B가 몸담은 캠프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경부는 5년 동안 공들인 ICT 정책 업무를 떼어내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했다.

2017년 5월 19대 대통령이 선출된 지금 산업통상자원부는 4년여 전의 전신인 지경부가 겪던 '분리 증후군'에 다시 시달리고 있다.

이번엔 통상 업무가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옛 외교통상부에서 산업부로 이관된 통상 업무를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청와대 직제 개편에서 통상비서관이 신설되자 '분리'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난 정부는 산업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무역협정 협상 대응력과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산업+통상' 조직 구조를 택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비롯해 신흥시장인 베트남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사실 통상 부처는 형태마다 장단이 있다. 외교·안보 분야와 연동을 강화하려면 산업과 통상 담당 부처를 분리하는 것이 좋다. 과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뒤져 있어 외교 분야에서 협상력을 높여야만 하던 때는 그랬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FTA 협상에서 시장 개방 폭의 최소화에 우선순위를 두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어차피 협상해야 하는 FTA 특성상 어느 한쪽 일방으로 이익을 거두기는 어렵다. 수세의 방어보다는 강점을 활용해서 취할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그저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바꿔 보자는 방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더구나 지금은 한·미 FTA 재협상 대응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앞둔 상황이 아닌가. 산업과 통상 조직 분리를 검토한다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고민해야 한다. 정권 중반에 들어가 통상 부문 성과를 지켜본 뒤 필요한 처방을 내리면 될 일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부처 거버넌스를 조정해야 하지만 새 정부 출범을 이유로 기계식 이관과 분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경험에 비춰 볼 때 공무원처럼 학습 효과가 높은 집단은 드물다. 새로 업무를 이관 받은 부처는 모두 내심 5년 뒤를 걱정할 것이다. 정권 초반에는 성과를 내려고 열심히 하다가도 후반기에는 속도를 늦출 게 분명하다. 어느 장관이 타 부처로 분리될 가능성이 있는 조직에 우수 인재를 배치하겠는가. 정부 부처가 주기로 겪는 '분리 증후군', 새 대통령 시대에는 풀고 가야 한다.

이호준 산업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