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1>질투는 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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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대단하다.” “정말 잘했어.”

이 한마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배가 아파서다. 같은 기수로 들어와서 먼저 승진했는데 기쁠 리가 있겠는가. '저놈 승진하는 동안 나는 확실히 병신 됐는데 무슨 축하냐고. 거짓으로라도 축하하고픈 맘 없다. 쌩 까자. 내 마음 진정될 때까지라도.'

질투의 화신이 여자라고? 남자의 질투는 치사하고 고약하다. 자기보다 먼저 승진하는 동료를 인정할 수 없다. '꼼수'를 썼다고 짐작하거나 엄청나게 '운'이 따랐다고 간주한다. 승진 속도가 빠를수록 '꼼수 조작'이 난무한다. 짐작은 날조되고 실체 없는 소문이 돼 속수무책으로 퍼진다. 소문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것에 은근히 쾌감을 느낀다. '운'으로 치부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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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거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야. 이걸 하도 잘해서 그렇게 된 거야”하며 손바닥을 비빈다. 옆에서 한술 거든다. “며칠 전 그 녀석이 사장하고 밥 먹는 걸 내가 봤거든. 뭔가가 있어.”

여자 질투도 못지않다. 외모가 예쁘면 '소파승진', 안 예쁘면 '뛰어난 실력'으로 치부한다. 예뻐서 욕을 먹는다. 진부하기 짝이 없다. 실력이 있어도 얼굴이 예쁘면 실력을 외면한다. 예쁜 외모로 '수작'을 부렸거나 어드밴티지가 작용했다고 의심한다.

잘나갈 때도 말이 많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면 비난을 쏟아낸다. 같은 여성 입에서 '쌤통이다'는 반응이 유독 많다. 삼삼오오 모여서 그의 출세나 성공의 배경에 온당치 않은 처세가 있었음을 확신하고 은근히 퍼뜨린다. 예쁜 여자의 성공에 대해 능력은 인정해도 성공은 못마땅한가 보다.

젊은 나이에 성공에 이르면 엄청난 뒷담화와 투서,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모두가 성공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성장하면 능력이지만 남의 성장은 '구린 작업' '엄청난 운' 취급을 한다.

이처럼 욕하는 이유는 알고 보면 질투 때문이다. 판도라 상자에서 뛰쳐나온 온갖 감정의 재앙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편화된 감정이 '질투'일지 모른다. 질투가 정신을 지배하는 순간 눈과 귀는 멀고, 분별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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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붙잡힌 '○○패치' 신상 털기 사이트 운영자의 범행 시작도 질투였다. 우연히 알게 된 중견기업 오너의 외손녀에게서 박탈감을 느꼈다. 이후 떠도는 소문을 바탕으로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없는 얘기'를 사실처럼 꾸며 대기 시작했다. 꾸며낸 '가짜 뉴스'는 몇몇을 거치면서 '사실'이 됐다. 질투의 파괴력은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려야 직성이 풀린다. 같은 반 친구의 콘택트렌즈 통에 세척제 락스를 두 차례나 넣어서 실명 위기에 처할 뻔한 사건도 나왔다. 예쁜 친구를 질투했단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이 엄청났다. 질투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모차르트를 독살한다. 이 영화가 상영된 뒤 2인자의 극단 심리 상태를 이르는 용어가 생겨났다. '살리에르 증후군'이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질투를 경계하는 메시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유교의 '칠거지악' 안에 질투가 들어 있고,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질투는 어지간해서 다루기 어려운 본능 영역이다.

질투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질투를 수용하는 방법이 문제다. 질투의 힘!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쓸 것인가, 남의 흠집만 찾는 열등한 에너지로 소비할 것인가. 질투에 집중하는 삶은 무기력하다. 살리에르 증후군은 결국 너 죽고 나도 죽는 못난 병이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