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퀄컴과 특허

[전문기자칼럼]퀄컴과 특허

퀄컴이 사면초가 위기에 몰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이 특허권을 남용해 경쟁을 제한하고 과도한 이익을 챙겼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 1조원대의 과징금을 퀄컴에 부과했다. 공정위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칩(약 25~30달러)이 아닌 휴대폰 완성품 가격(수백달러)의 몇 %를 특허 로열티로 받아 가는 것이 부당하다며 시정 명령도 내렸다.

퀄컴은 시정 명령에 특히 반발했다. 기업끼리 맺은 개별 계약을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개입하는 행위는 온당치 않다는 논리를 펼쳤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 같은 거래는 아무 문제없이 진행돼 왔다고 항변했다.

공정위의 조치는 국제전으로 번졌다. 애플은 퀄컴과 송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조사를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퀄컴이 공정 경쟁을 저해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FTC에 제출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미국 반도체 전문 매체 EE타임스는 “퀄컴이 세계(World)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평했다. 국내 언론은 특허 갑질, 깡패, 남용, 독점, 독식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어를 써 가며 퀄컴을 비판하고 있다. 특허로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어들인다'는 조롱도 섞여 나왔다.

물론 법원에서 퀄컴의 특허 남용 사실이 확정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안을 놓고 비방에 가까운 비판이 나오는 사회 분위기에 우려도 없지는 않다. 특허 제도 그 자체에 부정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특허법 제정은 147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처음이었다. 발명을 한 이에게 일정기간 독점권을 주는 것이 베네치아 특허법의 골자다. 현대 특허법은 범위가 넓어지긴 했지만 취지와 근간은 베네치아 특허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명자에게 독점권을 주는 베네치아 특허법은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로 각인됐다. 오스만에 의해 멸망한 동로마의 기술자들은 발명 권리를 지켜 주는 베네치아로 이주, 터를 잡았다. 베네치아는 특허법 시행으로 기술자 유입이 그 어떤 곳보다 많았다. 특히 출판업이 융성했다. 15세기 때 베네치아에서 출간된 서적의 양은 이전 1500년 동안 나온 서적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대다수 학자들은 1400~1550년의 150년 동안이 베네치아 경제 번영의 정점이었고, 특허법 시행이 긍정으로 작용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특허는 개인 또는 개별 기업의 지식과 기술을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만드는 긴 절차다. 특허를 보유한 이는 20년 동안 배타성 권리를 보장받지만 기술 내역을 상세하게 알리는 행위로 개인 발명을 인류 지식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퀄컴의 무선통신 원천 기술이 전 세계에 미친 긍정성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특허 제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그 효능 좋다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치료제가 세상에 나올 수 있기나 했을까. 특허를 '갑질' 도구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기술 없는 자들의 콤플렉스로 비춰질 수 있다. 퀄컴을 둘러싼 시시비비는 명확하게 가려져야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퀄컴처럼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나오려면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