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 산업혁명과 반도체

[기고]4차 산업혁명과 반도체

여러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순이익이 50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경제에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반도체 호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대형 서버와 모바일 기기 등 디바이스가 생성하는 데이터 양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정보 저장에 더욱 많은 메모리반도체가 필요해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세다. 품목이 적고, 기능이 대체로 단순하며, 규격화돼 있다. 우리 기업은 1980년대부터 메모리반도체에 투자, 미세 공정 기술을 확보해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제품 성능이 불필요하게 과도해서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있던 일본 기업을 누르고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반면에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장 규모가 3배나 큰 시스템반도체 기업은 아직도 어렵다. 지난 1년 사이에 우리 팹리스 기업의 이익은 30% 정도 급락했고, 기업 수도 줄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선진 반도체 기업들은 투자 공세를 지속하는 상황이다. 인텔, 퀄컴, 아바고 등 3개 기업이 최근 연구개발(M&A)에 투입한 자금 규모만 1000억달러를 상회한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 나서면서 최근 1년 사이에 팹리스 기업 숫자가 1400개로 2배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대만보다도 10년 정도 늦은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진출했다. 기술, 인력, 생태계 등 모든 면에서 아직 취약하다. 시스템반도체가 적용되는 분야는 이동통신, 디지털방송, 자동차, 스마트가전 등과 같이 매우 다양하지만 각 분야에는 세계 강자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장기간에 축적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연관 생태계도 구축해 놓고 있어 신규 진입이 어렵다.

시스템반도체는 품목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구성이 다르고, 여러 기술이 동시에 집적된다. 기능이나 성능 면에서 다양한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적기에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도체 칩 내부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SW)의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시스템반도체를 요즘 '지능형 반도체'라고도 일컫는다.

지능형 반도체는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값싼 데다 분석 기능이 빠르다. IBM과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능형 반도체의 새로운 미래 모습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기술 확보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 지능화에 바탕을 두게 된다. 지능화된 기기들이 상호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산업 및 사회에 유용한 서비스를 창출할 것이다. 물론 지능 수준은 적용 대상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환경 오염을 감시하는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요구하는 지능과 인간을 돕는 로봇이 요구하는 지능의 수준은 서로 다르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준의 지능을 센서나 신호처리 기술과 결합, 반도체로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술 확산이나 차별화가 가능하다.

우리 시스템반도체 업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관련 기관들만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관련 창업도 뜸하다.

시스템반도체 관련 산·학·연·관이 모두 상호 협력할 시점이다. 머리를 모아 창의 상상력을 발현토록 하는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 연구원이 협업해야 한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반도체 산업의 균형 발전이 시급하다.

엄낙웅 ETRI ICT소재부품연구소장 nweu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