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료 빅히스토리

[기고]재료 빅히스토리

최근 트렌드 키워드로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신조어가 있다. '빅데이터'처럼 두 개의 영어 단어로 구성된 '빅히스토리'다.

학문 입장에서의 '빅히스토리' 관심사는 첫째가 '물질'이다. 우주의 시작, 즉 태양 같은 항성과 지구를 비롯한 행성이 어떻게 생성됐는지 다룬다. 둘째는 '생명체'다.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탄생했는지와 이후 인류의 출현과 발전 과정은 어떠했는지 밝히고, 현재까지 정립된 사실 및 이론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한다.

빅히스토리의 최대 관심사인 물질은 재료 연구와 재료 기반 소재 산업의 토대다. 재료 연구의 시작과 발전, 현재까지의 성과와 미래 예측이 '재료 빅히스토리'다.

재료는 원자 물질의 결합 형태에 따라 금속, 고분자, 세라믹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을 개발해 시작된 산업혁명은 이후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광활한 북미 대륙에는 20세기 전부터 '금속' 철길이 거미줄처럼 연결됐다. 그 방대한 양의 철을 공급한 것은 앤드루 카네기의 공이 크다. 인류사에서 금속이 최고로 활약한 분야는 바로 철길이라 할 수 있다.

'고분자'를 살펴보자. 우리 조상들은 솜옷과 솜이불로 추운 겨울을 나면서 문익점의 목화 도입에 감사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인 1938년에 듀퐁사가 개발한 나일론은 인류의 의복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다. 인류사에서 고분자의 일등 활약은 바로 나일론이다.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부품의 80% 이상은 '세라믹' 재료다. 지난해 인공지능(AI) 알파고는 바둑천재 이세돌을 꺾고 AI의 가능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최첨단 가제트인 스마트폰과 AI의 등장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 개발을 들 수 있다. 트랜지스터는 세라믹 재료가 가져다 준 최고 선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연구자가 금속, 고분자, 세라믹을 녹이고 늘리고 가열하면서 그 특성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재료를 융·복합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복합재를 찾고 있다.

미래에는 어떤 재료 연구가 필요한지 재료 빅스토리 관점에서 찾고자 한다.

재료연구소가 개발한 바이오 세라믹 골 대체재.
재료연구소가 개발한 바이오 세라믹 골 대체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한편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수의 직업이 사라지고 대량 실직 사태가 올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고 본다. 이미 앞서 몇 차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러한 비관 예측은 모두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질 직업은 예상할 수 있지만 미래에 생겨날 일자리는 당시로선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한 기술과 제품은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인구의 99%는 농부였지만 지금은 5% 이하만이 농업에 종사한다. 다양한 필요성에 따라 여러 직업이 생겨나고, 대량으로 고용을 창출해 온 시대를 우리는 살아 왔다.

기계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신 수요는 분명 생겨나기 마련이다.

미래 재료 연구의 미션은 결국 기계와 AI가 할 수 없는 새로운 창의 재료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형마트에 가 보면 늘 '이 산더미 같은 좋은 물건이 다 팔리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경 없는 치열한 글로벌 과잉 생산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 이외 다른 길은 없다.

신기술과 신제품의 시작은 연구실이고, 재료 빅히스토리의 미래는 연구자들 손에 달렸다.

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yjpark87@kim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