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치매 vs 과학

치매는 현대 인류가 마주한 가장 어려운 도전 과제 중 하나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년층이 많아지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고귀한 노년, 행복한 가정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치매는 노년기 가장 흔한 뇌신경계 질환이지만 치료법도 원인도 뚜렷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도 '치매국가책임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전국 치매지원센터를 대폭 늘리는 것에서 출발해 치매 치료비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추는 게 목표다. 올해 하반기부터 당장 추진할 만큼 정책 우선순위가 높다. 치매가 더 이상 개인, 가정이 아닌 국가 차원 문제라는 인식이 반영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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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도 치매 정복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치매는 특정한 질병이 아니라 인지 기능 저하 같은 증상 전반을 통칭한다. 원인에 따라 알츠하이머성 치매, 혈관성 치매, 파킨슨 치매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알츠하이머 치매 비중이 가장 높고 연구도 활발하다.

과학계가 주목한 건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알츠하이머병 원인 물질이라는 가설이 유력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뇌세포 주변에는 베타-아밀로이드가 많이 쌓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독성을 가진 아밀로이드가 주변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치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세계 유수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독일 머크, 미국 일라이릴리 같은 제약사가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수년 간 전력을 다했다. 최근 잇따라 임상시험을 중단하면서 빨간 불이 켜졌다. 임상 단계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치매는 인류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만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다. 베타-아밀로이드 억제 외에도 아세틸콜린 합성 감소, 타우 단백질 과인산화 방지 등 다양한 가설 연구가 수행됐지만 성공 사례가 없다. 현재 공식적인 알츠하이머 관련 약품은 4~5개가량이다. 모두 근본 치료가 아닌 질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다.

치매 정복 연구는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는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원인과 치료 기전을 제시했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과다 생성되는 억제성 전달물질 '가바(GABA)'에 주목했다.

2014년 이창준 박사팀이 뇌 속 반응성 별세포(성상교세포)에서 나오는 가바가 기억 장애를 일으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반응성 별세포는 신경세포가 아닌 아교세포의 하나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흔히 발견된다. 가바는 신경세포의 정상적 신호 전달을 방해해 기억 능력을 떨어뜨린다.

KIST 연구팀은 최근 연구를 또 한 번 진전시켰다. 가바 양을 줄이는 방식의 새로운 치매 치료 후보 약물을 개발, 국내 기업에 기술 이전했다. 쥐 실험에서 인지 기능 회복을 확인했다. 적은 용량으로 장기 투여해도 효능이 있었다. 다른 신경계 부작용도 없었다. 현재 임상 진입을 위한 비임상 시험 단계다.

이 역시 임상 단계서 좌절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치료 기전을 이용한 후보 약물, 알츠하이머 환자 인지 장애를 근원부터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가바 억제 방식의 후보 약물은 기존 제약사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치매를 정복하려면 후보 약물 외에 뇌의 근원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뇌 신경망 지도(뇌 지도)'가 대표 사례다. 뇌 지도는 뇌 속 신경세포의 전체 연결을 종합 표현한 데이터베이스(DB)다.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는 뇌 기능 손상으로부터 나타난 증상이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수다. 뇌 지도가 완성되면 정확한 치매 진단과 예방이 가능해진다. 치료제 개발도 앞당길 수 있다.

우리나라도 뇌 지도 구축 사업에 적극적이다. 올해 국가 차원 뇌 지도 연구를 시작한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3975억원 예산이 투입되는 '뇌 지도 구축 및 뇌 융합 챌린지 프로젝트'도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 있다. 뇌 연구 원천 기술을 확보해 치매 극복 선진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