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號 공정위, '점진적 재벌개혁' 추진…“4대그룹 찍어서 몰아치지 않을 것”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예측 가능하고, 점진적인' 재벌개혁 추진 의지를 밝혔다. 초반부터 대대적 대기업 조사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 4대 그룹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방침이 '찍어서 몰아치듯' 조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19대 공정위원장으로 공식 업무에 돌입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만큼 신속하게 추진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13일 임명장을 받을 때에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에게 그런 부분을 양해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기업과 관련된 것은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을 몰아치듯 개혁해 나갈 수는 없다”며 “금융위원회 등과 협조체계를 구성해 정교한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두르지 않고,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게 가는 게 재벌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 김 위원장이 '재벌 저격수'로 불려온 만큼 취임 후 대규모 대기업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며, 정상적 기업 활동 저해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취임 첫 날 '속도 조절'을 시사하며 당장의 우려는 씻을 수 있게 됐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4대 그룹 관련해서도 “찍어서 몰아치는 방법으로 가지 않는다. 그렇게 갈 수 없다”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생각을 다듬어 다음 주 밝히겠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에 핵심 역할을 할 '기업집단국' 신설은 기대만큼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솔직히 기대만큼 (인력 충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행정자치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취임식 후 공정위 직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취임식 후 공정위 직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 사업자와 같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는 재차 밝혔다. 공정위 본연 역할인 '경쟁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경제사회적 약자 권익을 위한 '경쟁자 보호'에도 역량을 모으겠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경쟁 보호'와 '경쟁자 보호' 사이에 괴리가 상당히 크지만 이것이 계속 된다면 공정위에 부여된 시대적 책무를 다하기 어렵다”며 “괴리를 좁히기 위해 유관 부처와 공조체제를 기반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 노력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 많은 만큼 국회와 충실한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직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라”며 “그 다음은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직원이 전문성·자율성에 근거해 내린 판단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겠다는 의미다.

공정위 내부 기강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업무시간 외에는 공정위 OB(퇴직자)나 로펌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와 접촉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라”며 “불가피한 경우 반드시 기록을 남기라”고 당부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