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국적 기업의 글로컬라이제이션 경영

다국적기업은 해외 진출에 앞서 해당국 법 규정을 철저히 조사한다. 고액을 들여 현지 대형로펌을 고용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소소한 법적 걸림돌까지 살핀다. 진출국 로컬법이 비즈니스에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계 공통 사안이라도 로컬법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있다면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지키고, 로컬법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면 허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다국적기업 조세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소위 '구글세'를 유럽 등 국가에는 내고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내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케아와 폭스바겐이 미국·유럽·중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리콜·배상 등에서 차별하며 무시하는 행태도 로컬법 차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ICT 시장에서 다국적기업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서비스와 제품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는 공정경쟁 훼손이나 이용자 피해가 이어져도 현상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글로벌 IT 기업은 국내에 진출할 때 법적으로 공시·감사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유한회사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보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것이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이 19일 대표 발의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을 법의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자는 취지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자료를 요구해도 아무것도 제공 받지 못하던 답답함을 풀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소극적 법안조차 통상마찰 등이 고려돼 당초보다 크게 후퇴한 안이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법적인 공개 의무를 부여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다국적기업이 한국에서 글로컬라이제이션(글로벌라이제이션+로컬라이제이션) 경영을 펼 수 있도록, 우리 로컬법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