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바꾼 나노] 삶의 질 향상과 산업 성장 원동력 된 '나노'

[대한민국을 바꾼 나노] 삶의 질 향상과 산업 성장 원동력 된 '나노'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나노기술(NT)이 삶의 질을 바꾸고 있다. NT 덕분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혁신 제품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물속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가 하면 내 몸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고, 생각만으로 기계를 작동시킨다. NT는 주력 산업에서 생활 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된다. 결과물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인간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그런 세상, 모두가 꿈꿔 온 건강하고 즐겁고 안전한 삶을 만들어 가는 라이프 케어 중심에 바로 NT가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히든 테크놀로지 '나노'

NT 덕분에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된 나노 융합 대표 제품으로 방수폰이 있다. 방수폰에는 재미있는 탄생의 비화가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주의해야 할 큰 불편함이 있었다. 절대로 물에 빠뜨리면 안 된다는 것. 당시에는 이런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방수폰
방수폰

특히 스마트폰 핵심 부품인 마이크와 스피커는 방수가 되는 동시에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기술이 바로 '나노 섬유'다. 섬유 사이에 미세한 나노 크기의 기공이 촘촘히 분포돼 있는 나노 섬유는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물은 차단한다. 이런 나노 섬유의 성질을 이용, 방수와 소리 전달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나노가공기술 적용 오염방지 의류
나노가공기술 적용 오염방지 의류

옷에 음식물을 흘려도 걱정 없게 된 것도 NT 덕분이다. 옷을 직조하는 섬유 실 표면에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 1에 해당하는 미세한 나노 수염을 촘촘히 만든 덕이다. 나노 수염이 붙어 있는 특수 섬유를 직조하면 음식물을 옷에 흘려도 전혀 자국이 남지 않는 신개념 셔츠와 바지를 만들 수 있다.

TV 개발에도 NT가 쓰였다. 삼성전자에서는 양자점(퀀텀 닷)이라는 나노 입자를 적용한 초고화질 퀀텀닷 TV인 QLED TV를 출시했다. 빛을 흡수했다가 다시 방출하는 반도체 입자가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양자 효과에 의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나노 입자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색깔이 달라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노 입자인 양자점을 TV에 적용, 거의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한 영상을 구현하는 초고화질 퀀텀닷 TV가 탄생했다.

삼성전자 모델들이 29일 QLED TV 'Q8(커브드)' 75형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델들이 29일 QLED TV 'Q8(커브드)' 75형을 소개하고 있다.

◇나노 EUV로 반도체 한계 극복, 주력 산업 업그레이드

반도체 양산 기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노광 기술이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미세화해 집적도를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비용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공정이다.

지금은 초호황기를 누리는 한국 반도체 산업도 초기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반도체 산업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던 미세화 기술 한계 때문이었다. 이 한계를 극복한 원동력이 바로 NT다.

[대한민국을 바꾼 나노] 삶의 질 향상과 산업 성장 원동력 된 '나노'

일본, 미국, 유럽에서는 30여년 전인 1980년대부터 연구개발(R&D)이 시작된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은 불과 17년 전에 처음 국내에서 기초 연구가 시작됐다. 대학 연구실에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연간 3000만원 예산으로 시작한 EUV 관련 연구는 2003년에 들어서면서 산업자원부의 대규모 장기 R&D 사업으로 확대된다. 2001년에 설립된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 설립으로 활성화된 연구조합 제1호 국책 R&D 사업이다. 이 정부 지원이 오늘날 세계 최초로 EUV 노광 기술 양산 적용의 초석이 됐다.

국책 사업 수행을 위해 인력과 재원을 투입한 기업은 자체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다. 노광 기술을 반도체 소자 양산에 적용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회사는 세계에서 네다섯 곳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이다.

EUV 노광 기술은 전방산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사업 기회일 뿐만 아니라 건전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기회다. 한국 반도체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첨단 기술력 확보이고, 정점은 EUV 노광 기술을 이용한 최첨단 반도체 소자 개발이다. 국내 EUV 노광 기술 개발은 '기초 연구-개발 연구-사업화'로 이어진 정부 R&D 지원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나노로 초전도 세상을 열다

부족한 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가동되고 있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손실 없이 사용하는 것이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발전소로부터 원거리 송전을 할 때 약 5% 이상의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송전 시 손실을 줄이는 원리는 간단하다. 전기 저항이 없는 전선을 사용하면 된다. 전선 소재 구리는 전기 저항이 낮지만 '0'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높은 전압과 굵은 전선(케이블)이 필요하다.

서남의 초전도 선재 제품
서남의 초전도 선재 제품

전기 저항 '0'인 전선의 소재도 NT로 탄생했다. 서남은 전기 저항이 0인 '초전도 선재'만을 제조하기 위해 2004년에 설립됐다. 서남이 개발한 초전도 선재는 전기 저항이 0인 무손실 송전을 가능케 하는 초전도 케이블을 구성하는 핵심 소재다. 독자 개발한 생산성 높은 동시 증착·반응(RCE-DR) 공정으로 제조된다.

초전도 선재 내부에는 직경 40나노미터(㎚) 입자가 촘촘하게 배열돼 있어 자기공명영상(MRI)에서와 같이 높은 자기장이 걸려도 초전도 특성을 유지한다. 서남은 세계 최고의 생산 속도와 전류 밀도, 세계 최저의 생산가(최저 경쟁사 50% 수준)를 달성했다.

국제초전도학회(ISTEC)에서 발표(Izumi 박사)한 초전도체 경쟁력 변화 (임계전류(Ic) × 제조길이(㎞))
국제초전도학회(ISTEC)에서 발표(Izumi 박사)한 초전도체 경쟁력 변화 (임계전류(Ic) × 제조길이(㎞))
서남, 경쟁사와 비교 표
서남, 경쟁사와 비교 표

서남은 2012년 이후 3년 동안 나노융합2020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자속 고정점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초전도 선재의 특성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양산 공정 안정성도 확보했다.

서남의 초전도 선재 개발 성공 의미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나노 크기의 자속 고정점을 고밀도로 형성시킬 수 있는 독자 공정으로 물성, 경제성에서 세계 최고 위치에 올랐다는 점이다. 고온초전도체 연구 황무지이던 한국이 2001년에 착수한 '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개발 사업' 이후 15년 만에 순수 국내 기술력만으로 초전도체 사업화에 성공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초전도 케이블의 구조
초전도 케이블의 구조
초전도체의 응용분야
초전도체의 응용분야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