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혁신 철저히 보상해야 '글로벌 기업' 탄생

[기고]혁신 철저히 보상해야 '글로벌 기업' 탄생

필자는 오랫동안 연구자로, 교육자로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선배·동료·제자의 영광과 좌절을 지켜봤다. 국내를 넘어 세계 첨단 기술의 전장에서 엔지니어의 꿈을 펼치는가 하면 좌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특허 강국의 위상을 떨친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의 창업가는 여전히 한 번의 실패로 허망한 끝을 맺고 미국 실리콘밸리를 아득한 꿈처럼 동경한다.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지속하는 풍토를 갖게 됐을까. 잘 갖춰진 인프라, 도전 의식을 고취시키는 문화,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의 존경 이전에 실패를 방관하지 않는 상호 방패 의식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이 지역의 많은 스타트업은 기술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 회사를 큰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이른바 '먹튀'라고 질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그 조직을 그대로 흡수하고 주체성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울타리가 줄 수 있는 혜택을 얻고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경쟁자의 제안조차도 수용하는 모습은 엔지니어식 발상이기에 가능하다.

반대로 어떤 스타트업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비록 기술이 아직 미완이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하더라도 추가 투자를 하거나 회사를 인수하는 일 또한 흔하다. 실리콘밸리의 풍토는 어쩌면 실패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실패하지 않도록 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는 끈끈한 보호 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속 혁신을 가능케 하는 더욱 중요한 동인은 철저한 R&D 보상에 있다. 글로벌 ICT 산업에서 여전히 위세가 큰 미국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으로 특허 역량을 강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항하듯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정부와 기업의 특허 굴기도 만만치 않게 팽창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특허권이 혁신에 대한 강력한 동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본다.

반면에 모바일 통신 솔루션 기업 퀄컴의 표준 특허 남용을 강력히 제재하면서 특허 비즈니스 모델을 불허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사례를 한번 되짚어 보자. 혹자가 이보다 한 발 앞서 해당 기업에 같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한 중국발전개혁위원회(NDRC)의 사례를 동일하게 봤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중국 경쟁 당국이 퀄컴에 특허 실시 요율 조정을 명했지만 라이선스 모델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미래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포석이다. 자국의 ICT 혁신 생태계를 위해 강력한 특허 보호 기조를 유지하려는 중국은 자국 기업이 머지않아 특허 비즈니스로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을 인정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에 달렸다고 말한다. 미래에는 기술 개발과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공정위의 평결은 특허 가치를 낮춤으로써 기술 개발에 대한 보상 또한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혁신 원천 기술을 개발해서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공정위의 평결이 이 기업에 해외의 다른 기업으로부터 기술 특허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굴지의 ICT 기업을 육성하려면 역경을 이기고 뚝심있게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발한 기술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상의 환경 구축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기술 중심의 기업은 자사 기술로 얻은 가치를 당장 배당하기보다 더 나은 기술을 위해 재투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보상이 사라지면 혁신의 선순환은 동력이 약화, 작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 때문에 기술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특허는 혁신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보상이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기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는 중대한 가치다. 당장의 이익을 고려해 남긴 선례가 결국 우리 기업의 혁신 가치 하락과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무섭게 경계해야 한다.

이황수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hwangl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