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자리가 샘솟는 곳은 어디인가

[데스크라인]일자리가 샘솟는 곳은 어디인가

2000년 이후 TV와 영화에서 사극이 늘었다. 지상파 3사의 사극 방영 편수만 봐도 갑절 가까이 급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평론가들이 논쟁을 벌였다. 재미있는 분석 하나가 있었다. 바로 '김대중(DJ) 정부의 공공 근로 사업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공공 근로 사업은 외환위기(IMF) 시절에 실직자가 넘쳐 나자 정부가 단기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안한 일종의 '뉴딜 사업'이다. 공공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같은 단순 노동에 많은 사람이 투입됐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그러나 단시간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DJ 정부는 밀어붙였다.

DB 구축 사업으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료가 디지털로 재탄생했다. 그것도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되기까지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연산군' '장희빈' 등 키워드만 넣으면 관련 사료나 일화가 한눈에 검색됐다. 드라마 작가나 PD가 어려워서 엄두조차 못 낸 사극의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 사극 제작 열풍의 배경으로 공공 근로 사업이 지목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DJ 정권이 이것까지 내다보고 공공 근로 사업을 추진했다면 미래를 보는 혜안이 대단했다. 공공 근로가 단기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고 사극이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까지 살찌웠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는 공공 근로보다 그 사업이 낳은 산업 생태계에서 창출됐다.

문재인 정부가 첫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도 파급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당장 공공 부문부터 시작하더라도 파급력이 큰 산업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1일 일자리위원회 첫 번째 회의에서 경영자 대표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업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씨앗을 뿌리면 산업계가 풍성한 열매를 맺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민·관이 앞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떤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할 것인가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신소재·부품 등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리 경제의 미래까지 예비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왕이면 실현 가능성과 파급 효과가 큰 산업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이상과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비즈니스 세계다.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알파고 충격'으로 야기된 AI 신드롬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줄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 솔직히 우리가 서둘러 AI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해서 구글을 넘어설 수 있을까.

반면에 공사가 한창인 삼성전자 평택 신공장이 조성되면 일자리 15만개가 창출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당장 신축 현장에는 매일 노동자 1만8000여명이 투입되고 있다. 공장이 가동되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장비·소재 납품업체 등 협력사도 일감이 늘어나 직원을 대량으로 뽑을 수밖에 없다. 2차, 3차, 4차 협력사에까지 일자리가 세포 분열하듯 삽시간에 늘어난다. 공장 주변이 발달하면 편의점, 식당, 부동산중개소 등 자영업 생태계도 만들어진다. 일자리 창출에도 낙수 효과가 나타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DJ 정부의 공공 근로 사업보다 더 파급 효과가 큰 산업 영역이 많다. 정부의 역할은 진짜 이런 곳에 마중물을 뿌려 주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분야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DJ정부 DB 구축사업으로 디지털 자료로 재탄생했다. 디지털 자료로 일반에 공개되면서 활용율이 높아졌다.
조선왕조실록은 DJ정부 DB 구축사업으로 디지털 자료로 재탄생했다. 디지털 자료로 일반에 공개되면서 활용율이 높아졌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