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테헤란로에서 고리1호 원전까지

1977년 6월 27일. 꼭 40년 전 이날 개발 붐으로 과수원과 밭이 갈아엎어진 서울 강남의 한 신작로 입구에 이색 기념비가 세워졌다. 열흘 전 이란 수도 테헤란시의 시장이 서울시를 방문한 길에 양측의 자매 결연 체결을 기념해 서울시에는 '테헤란로', 테헤란시에는 '서울로'를 각각 두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강남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볼 수 있는 '테헤란로' 표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테헤란로는 1973년 세계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한국에 석유를 공급해 준 이란에 대한 고마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 들어 배럴당 평균 2달러를 밑돌던 국제 유가가 1973년 2.8달러로 오르더니 1974년에 10.98 달러로 무려 4배 가까이 뛰었다. 제1차 석유 파동으로 우리 경제는 심각한 난관에 부닥쳤다.

당시 대통령 경제 제2수석비서관이던 오원철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1973년 11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세계 최대 석유 메이저사인 걸프의 본사가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를 향해 출발했다. 중동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와 원유 거래를 하던 걸프, 칼텍스, 유니온 오일 등 3사가 평균 22%의 공급 축소를 통보해 왔다. 이는 곧 경제 마비를 의미했다. 대통령의 특명은 무조건 해결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피 말리는 협상 끝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에너지 구걸 외교였다.”

이러한 제1차 석유 파동은 1973년 10월에 시작해 1975년 중반에 끝났다. 1973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 회견에서 발표된 중화학공업화와 방위산업 육성, 100억 달러 수출 목표 등 야심에 찬 경제 정책이 위기를 맞았지만 용케 견뎌 냈다.

소강 상태를 보이던 유가는 1978년 배럴당 12.91달러에서 1979년 29.19달러, 1980년 36.01달러로 급등했다. 이 역시 중동전쟁으로 인한 제2차 석유 파동이었다. 이때는 역발상으로 이뤄진 중동 건설 진출과 에너지 자력화 노력 덕분에 큰 타격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제2차 석유 파동 때 국가 경제의 구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였다. 1971년에 착공해 1978년 상업 운전을 개시한 고리 1호기 건설은 당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다. 총 건설비 1560억원은 국내총생산(GDP)의 5%(정부 예산의 약 30%)를 차지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4배에 해당하는 자금이 투입됐다.

고리 1호기는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에너지 대란을 넘어서는 동시에 경제 발전 원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를 이틀 앞둔 지난 16일 필자는 고리로 달려갔다. 1호기 중앙제어실에는 '우리가 가는 길이 한수원의 역사다' '영구정지 D-2'의 구호가 내걸려 있었다. 제어 요원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원자로와 터빈 등의 제어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현지에서 영구 정지 선포식을 갖고 탈 원전을 선언했다. 고리 1호기는 계획 당시 설비 용량이 국내 총 전력 생산에 버금가는 큰 규모였지만 지금은 20여기의 원전 가운데 가장 작은 맏형이다. 1978년부터 2016년 말까지 부산 지역 전체가 8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했다. 우리나라는 이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 6위의 원전 강국으로 떠올랐다.

고리 1호기와 테헤란로는 우리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상징물이다.

에너지·자원 빈국인 우리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테헤란로는 이제 스타트업, 벤처가 몰려들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테헤란로는 1980년대 후반에 금융가로 자리 잡았다가 1990년대 후반 들어와 정보기술(IT) 바람이 불면서 소프트웨어(SW),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입주했다. 이곳에서 'IT 강국 코리아'를 선언하면서 3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정보통신 혁명의 산실 역할을 했다.
고리 1호기는 지난 40년 동안 저렴한 전력의 안정 공급을 통해 경제 성장 견인과 원전 수출의 전진 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주축으로 하는 신에너지 체제 구축에 나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밝힌 '탈 원전(핵) 독트린'이 신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그린 뉴딜 정책'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곽재원의 Now&Future]테헤란로에서 고리1호 원전까지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