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현장이 공감하는 출연연 혁신을 기대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혁신 작업이 시작됐다. 출연연의 혁신은 오랜 과학기술계 숙제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거론됐다. 출연연 스스로도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자체 방안안 마련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만큼 출연연의 운영에 문제가 많았다.

[데스크라인]현장이 공감하는 출연연 혁신을 기대한다

정부는 '행정 업무 일원화'를 첫 번째 목표로 내걸었다. 행정 업무 일원화는 출연연의 행정 업무 부담을 줄여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주자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 몰입 환경 조성'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과도 맞닿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이를 위해 '출연연 연구 행정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켰다. NST는 미래부 소관 25개 출연연을 관리, 감독, 지원하는 통합 연구회다. TF는 한 곳에서 공동 수행할 수 있는 행정 업무 리스트 도출 작업부터 시작한다. 이후 타당성 검토를 거쳐 NST에서 통합 수행한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NST는 2년 전부터 출연연의 행정 효율화 추진단을 운영했으니 통합 행정 업무는 NST가 맡을 공산이 크다.

이번에는 정부가 첫 단추를 제대로 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출연연 문제는 대부분 날로 비대해지는 조직에서 비롯됐다. 출연연은 연차가 쌓이면 연구원 수가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관리 업무도 많아져서 행정 인력도 늘어난다. 인건비 비중은 계속 높아지는 반면에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은 줄어들었다. 실제로 25개 NST 소속 출연연은 정부 출연금의 절반 이상(평균 51.4%)을 인건비로 사용한다.

출연연이 매년 예산 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다. 부족한 R&D 예산은 외부 과제를 수탁해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연히 과제를 수행할 연구원이 그 작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는 이런 상황을 한층 악화시켰다. 외부 과제를 따내기 위한 제안서와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모두 연구원 스스로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됐다. '연구 외 목적 업무 부담'은 기하급수로 늘었다. 본연의 연구보다 서류 업무에 더 매달려야 하니 연구 집중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출연연의 행정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 연구원들이 돌아가며 행정직에 근무하는 현상도 빚어졌다.

정부의 행정 업무 일원화 추진은 이 같은 상황을 한꺼번에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연구원들이 장기 과제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출연연 간 중복을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다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출연연은 설립 목적과 기능에 따라 특성이 다양하다. 개발 과제가 원천 기술이냐 상용화 기술이냐에 따라서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다르다.

TF에서 우선 일원화할 수 있는 업무 리스트를 도출하기로 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감안, 통합할 수 있는 행정 업무를 가려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행정 업무 일원화는 출연연 혁신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과학기술계가 보내는 관심이 뜨겁다. 이 밖에도 출연연의 법률상 지위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혁신이 시급한 출연연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어질 혁신 방향도 과학기술계, 혁신 대상인 출연연과 연구원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