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럽부터 중국까지...고개 드는 인터넷주권

[이슈분석]유럽부터 중국까지...고개 드는 인터넷주권

유럽연합(EU)이 구글 대상으로 3조원에 이르는 과징금 폭탄을 부과했다. 검색 영향력을 바탕으로 쇼핑, 여행, 지역 등 자사 서비스를 유리하게 노출했다는 것이다. 불공정 행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다. 애플, 아마존 등 미국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조사에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 주권 강화 조치라는 분석이다. 단순 불공정 행위 시정 이외의 포석이라는 시각이다.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도 글로벌 기업에 맞서 인터넷 주권을 확립하려는 논의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슈분석]유럽부터 중국까지...고개 드는 인터넷주권

◇EU와 글로벌 인터넷 기업 갈등, 이제 시작

EU와 글로벌 인터넷 기업 간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구글은 이번 과징금 부과에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U도 구글이 막강한 검색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자에게 피해를 준 혐의로 2010년부터 조사해 온 만큼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릴 공산이 크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 담당 집행위원은 이 같은 결정을 발표하면서 “구글은 몇 년 동안 독점에 가까운 온라인 검색 지배력을 남용해서 다른 기업의 공정 경쟁 기회를 빼앗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EU는 구글 이외에도 아마존, 애플 등 미국 기반의 IT 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구글은 검색 외에도 애드센스 광고 서비스,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등과 관련한 불공정 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고개 드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규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글로벌 인터넷 기업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이용자 데이터를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JFTC)는 지난 5일 빅데이터 공정 활용 촉진을 위해 데이터 분야 경쟁에 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곧 발표한다고 밝혔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이 국민의 데이터와 정보 독점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중국도 최근 글로벌 인터넷 기업 규제의 고삐를 더욱 죄었다. 중국 이용자가 감시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우회하기 위해 만든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를 불법화하며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 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컴퓨터에 만리방화벽을 설치하는 인터넷 쇄국주의로 구글과 페이스북의 접속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텐센트, 바이두 등 자국 기업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도에서도 지난해 2월 페이스북 프리베이식 사업을 금지했다. 프리베이식 사업은 개발도상국 이용자의 인터넷 무료 접속 지원 사업이다. 그러나 인도통신규제국(TRAI)은 망 중립성 원칙 위반을 이유로 서비스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8월에는 구글이 인도의 도시 거리를 3D로 구현하는 스트리트뷰 서비스 허가를 신청했지만 안보를 근거로 허가하지 않았다.

◇인터넷 주권 강화, 주요 화두로 떠올라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각국의 인터넷 주권 강화 의도가 깔려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인터넷 기업들은 거대한 자금력과 첨단 기술을 앞세워 시장 지배 사업자로 올라섰다. 이들 기업이 국가를 뛰어넘어 급속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떠오른 바탕에는 인터넷 공간이 단일 세계 공간, 가치중립 지역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바탕이 됐다.

정부는 인터넷 공간의 통제 관할권을 놓고 지속해서 문제에 직면했다. 고정 사업장이 존재하지 않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상대로 기본 중 기본인 세금 징수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빠졌다. 가치중립의 단일 공간이라는 인터넷 정의 이면에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 미국 기업의 글로벌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재천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이 기존의 국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공간이라는 개념은 미국 정부, 기업, 시민단체에 의해 퍼져 나갔다”면서 “인터넷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보안국(NSA)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으로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서버에 접근, 일반인의 정보를 빼낸다고 폭로하면서 인터넷 주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당시 독일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과 진행하던 사업을 파기하고 자국 회사에 프로젝트를 맡겼다.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에 맞서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지난달 이탈리아 정부는 구글이 10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았다며 3900억원을 거뒀다. EU는 지난해 애플에 약 16조원 규모의 법인세 추징을 결정했다. 영국 정부도 2015년에 구글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며 1900억원을 징수했다.

◇인터넷 공간 보호무역주의 강화

세계 각지의 인터넷 주권 강화 움직임을 두고 보호무역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과도한 조치라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온라인 광고 등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 규모는 급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집되는 각종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한 동력으로 꼽힌다.

박 교수는 “인터넷 공간은 정보 공간에서 비즈니스 공간으로 변모했다”면서 “인터넷 기반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 주권 행사 등 조치를 점차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U가 구글 옥죄기에 들어가는 것은 연이은 자체 검색 서비스 실패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수차례 자체 검색 서비스를 키우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손잡은 유럽형 검색 엔진 콰에로(Quaero)는 약 2900억원이 투입됐지만 2013년 말에 사이트 문을 닫았다. 독일 독자 검색 엔진인 테세우스(Theseus)도 실패했다. 세계에서 자국 검색 서비스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곳은 한국, 체코, 러시아, 일본, 중국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2005년 집권 당시 “프랑스와 유럽은 미국 문화에 맞서 특별한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구글, 야후 등이 장악한 검색 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