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디에나 존재하는 표준시, 장파방송국

[기고]어디에나 존재하는 표준시, 장파방송국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무의식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아닐까. 평범한 일상이라면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시계를 보게 된다. 즐거운 여행길의 첫날이라면 예약한 기차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쌓아 '한 해'를 살면서 '평생'을 보내는 우리는 시간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또 다른 이들과 수많은 시간 약속을 하면서 살아간다. 일상의 시간 약속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만국 공통의 시간 표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히 보는 시계는 생각만큼 정확하지 않다. 전자 손목시계, 탁상시계 등은 보통 하루에 수 초 정도 빠르거나 느려지며, 휴대폰도 때로는 초 단위로 틀린 시간을 나타낸다.

이 정도의 오차는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일상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인프라는 훨씬 더 정확히 시간이 맞아야 동작한다. 통신 네트워크는 곳곳에 시계가 설치돼 있어 100만분의 1초 이상 시간이 서로 다르면 스마트폰으로 통화할 수도, 인터넷 검색을 할 수도 없다.

전국의 전력망에 설치된 시계가 같은 정도의 오차를 보이기 시작하면 전력 송신에 큰 손실이 발생, 전력난에 시달릴 것이다. 은행과 증권 시장은 마비될 것이며, 교통 제어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기차나 비행기의 연착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통신, 금융, 증권, 교통 인프라 곳곳에 숨어 있는 시계가 필요한 오차 수준 이내로 끊임없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전국에 퍼져 있는 시계가 맞춰질까. 대부분의 국가는 위성항법시스템(GPS)에서 방송하는 시간 정보를 국가 시각 동기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GPS는 미국이 운용하는 시스템으로, 우리 통제에 있지 않다. 설령 GPS 운용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GPS 신호의 정상 수신을 방해하는 재밍, 스푸핑 등의 공격이 일어난다.

정밀 시각 동기 실패가 일으킬 수 있는 막대한 위험성 때문에 GPS를 보유한 미국조차 장파표준시방송국(WWVB) 등 이삼 중의 백업 시스템을 구축, 운용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은 WWVB를 운용할 뿐만 아니라 독자 위성 항법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 방송을 목표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장파표준시 시험 방송국을 구축하고 있다.

WWVB는 GPS와 달리 실내에서도 수신이 가능하다. 방송국이 구축되면 한반도 전역에서 수신된다. 평생 맞추지 않아도 되는 시계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시간 정확도가 우수하고 저전력의 소형 수신 칩으로도 수신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이 핵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을 위한 인프라로 기능한다.

현재 구축되고 있는 한국형 WWVB는 다른 나라 방송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표준시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부가 정보도 함께 송신할 예정이다. 지진 등 국가 재난 정보는 유선망의 한계를 넘어 단시간에 전국에 전파, 국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다양한 전력 생산원으로부터 실시간 전력 생산 및 유효 정보를 수집, 방송한다. 탈원전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전력 생산, 소비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다. 가정과 산업체는 장파 수신 칩이 장착된 가전제품, 설비 등을 전력 요율이 낮을 때 동작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전기료를 절약하고 국가 피크 전력량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전력 생산자는 전력 수요가 높을 때에 맞춰서 전력을 생산,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게 될 것이다.

장파표준시 및 부가정보 방송국은 막대한 응용 가능성을 품고 있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이어지리라는 희망도 있다.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장파방송국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청사진은 연구자의 노력, 정부의 지원, 국민의 관심이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유대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장 dhyu@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