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8> 결혼 전 숙려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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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lt;28&gt; 결혼 전 숙려기간

방송국 W 피디는 이혼을 준비한다. 이혼 사유는 아내의 '불결함'이다.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안 한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먼지가 수북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내는 목욕을 싫어한다. 씻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천성이 게을러 그렇다. 결벽증이 있는 W는 진저리를 친다. 연애할 땐 전혀 몰랐단다. 아내가 씻지 않는다고 법원이 이혼을 해줄까. 4주 '이혼 숙려기간' 동안 잘 씻도록 설득하라는 법원 결정이 예상된다.

후배 P는 신혼여행에서 지금의 아들을 가졌다. 그 후로 남편은 한 번도 자신과 동침하지 않았다. 약혼 후에도 스킨십을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해 '보수적인 남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품지 않는 남편에게 수치심을 느꼈다. 왜냐고 묻지 못했다. 술 마시면 손찌검도 했다. 어느 날 후배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남자'를 집안으로 들였다는 이웃의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동성연애자였다. 명백한 위장결혼이다.

친구 J는 유학 보낼 딸 걱정으로 잠을 설친다. 품에 두고 있다가 자신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시킬 계획이었지만 딸은 자유로운 세상이 좋았다. 감시망을 벗어나 결혼 전에 '일 저지를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녀는 딸의 성적자기결정권(性的自己決定權)을 꼭 쥐고 있다. 대화 중 아무 것도 모른 채 결혼한 게 억울하다는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딸이 너처럼 살았으면 좋겠냐?”

대학 4학년 때 프랑스 말을 배워보려 문화원을 기웃거리다 만난 강사 프랑소와즈. 어느 날 한남동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했다. 남자 살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동거한다고 말했다. '혼전순결' 만을 알았던 당시 무식하게 물었다. “왜 동거를?” 그녀 답은 명쾌했다. “좋으니까 사는 거고 살아봐서 더 좋으면 결혼해도 되잖아.”

프랑스는 혼전 동거를 인정하는 나라다. 동거 중 낳은 자녀는 정부로부터 의료, 교육, 양육 혜택을 받는다. 프랑스 장관 26명 가운데 5명이 여성장관, 이 가운데 2명이 혼전동거 중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우리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가 프랑스다. 서구에서 연인의 혼전 동거는 흔하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동거하는 사람을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결혼 후 상당수는 후회한다.

“이런 줄 몰랐어.” 배신감에 시달리며 달라진 배우자 태도를 원망한다. 상대를 너무 몰랐다고. 결혼 후에 알았다고. 그런 관점에서라면 미혼 남녀는 결혼 전 상대방을 관찰하거나 살필 수 있는 시간은 있어야 한다. 이혼 숙려기간보다 결혼 전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살아 봤어야 알지!” 엄마들이 한탄한다. 평생을 살아갈 상대방이 게으른지 성실한지, 성 정체성은 무엇인지, 언행에 일관성은 있는지, 여자를 막 쓸지 아낄지, 남자의 기를 살려줄 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엄마들은 모르고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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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다면 동일한 공간에서 장시간 관찰해 보라. 헷갈릴 땐 오래,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일인데 몰라서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이것을 나는 '결혼 전 숙려기간'이라 한다.

조선시대, 쌍팔년도 시절이 아니다. 우리 아이에게 '손 한번 안 잡아보고 결혼했지만 잘 살아왔어. 서로 맞추고 사는 게 인생이고 결혼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다.

결혼은 기쁨과 상처를 통해서 인간이 더욱 성숙해지는 또 다른 경험이다. 혹자는 위험한 선택이라 한다. 위험한 선택이 되지 않으려면 더 깊이 상대를 관찰하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온전히 그대 책임이기에.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