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6>반쪽짜리 4차 산업혁명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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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설명서대로 조종하는데도 오류가 나는 경우가 있다. 기능을 업데이트하면서 설명서는 갱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쪽 다리만 성장하는 소아마비성 진화는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도 발생한다. 기술 변화를 더디게 받아들이거나 급변하는 사회에 비해 규범이 거북이걸음으로 갱신되고 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얼마 전 대구 여고생 살인 사건이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보도가 있었다. 피해자 기족은 더욱 힘들겠지만 범인을 확증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에 보는 사람들도 안타깝기만 하다.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법의 한계를 탓할 뿐이다. 과거 상황에나 어울리는 '공소 시효'라는 규범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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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학자들은 증거 변질의 가능성, 수사력의 한계, 용의자의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공소 시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전자 분석 등 과학 수사가 가져온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변명이다. 과학 기술 발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증거 복원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범죄의 글로벌화와 국제 공조의 정체가 공소 시효를 악용하려는 범죄자에게 도피처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소 시효는 폐지하고 수사력의 효율 활용을 위해서는 수사 기간을 한정하거나 검찰의 요구로 공소 시효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정치 이슈로 부각시키는 것은 과학 기술을 폄하는 구시대 유물이다.

2017년 7월 8일 오후 2시 경부선 고속도로 하행선에서 50대 부부는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주말 나들이의 행복과 다음 여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평범한 행복을 졸음운전이 한순간에 빼앗아 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안한 마음으로 소름끼치는 사고 장면을 국민 모두는 목격해야 했다. 일주일 후에는 전남 담양에서는 또 다른 50대 부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봉평터널에서 발생한 끔찍한 교통사고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대통령은 '예산이 좀 들더라도' 졸음운전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경찰은 사고 회사를 압수 수색함으로서 졸음운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늘 하던 일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 발달을 충분히 이해했으면 졸음운전만이 아니라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차량에 '충돌 제어 장치 부착'을 지시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한 해 교통사고로 4000명 가까운 목숨을 잃었다.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전쟁 억제를 위해 1조4000억원의 예산을 증액하고 연 40조원 이상의 국방 예산을 지출하는 정부가 해마다 5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사업에 예산 운운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위급한 순간에 충돌을 방지하는 제어 기능을 버스와 트럭 등에 탑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돈이나 기술 문제가 아닌 정책 문제다. 기술이 있으면서 도입을 미루는 것은 반쪽자리 발전에 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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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발전은 어색하고 느리다. 4차 산업혁명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국가 전체의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성공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국가 지도자는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내는 4차 산업혁명의 결과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서둘러 도입하고, 이를 수용하는 사회 문화와 규범으로 맞장구치는 길이 미래를 여는 열쇠임을 이해하고 적극 추진하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