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나노기술 육성 정책 추진할 컨트롤타워 만들자

[데스크라인]나노기술 육성 정책 추진할 컨트롤타워 만들자

양자 전기역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1959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열린 물리학회 강연에서 “바늘 끝에 대영백과사전 전권을 수록할 수 있다”며 나노기술(NT)을 제창했다.

국내에서 NT 연구개발(R&D)에 본격 나선 것은 이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이다. 2001년에 처음으로 NT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NT개발촉진법도 제정했다. 이후 나노종합팹센터(2002년·현 나노종합기술원), 나노소자특화팹센터(2003년·현 한국나노기술원), 나노기술집적센터(2004년·포항, 전주, 광주)를 잇따라 구축해 분야별 NT R&D 및 기업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을 추진했다.

그후 또다시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NT는 비약 발전했다. 양자컴퓨터 개발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고, 줄기세포를 원하는 신체 부위에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나노바이오 기술이 속속 구현되고 있다. 화장품, 의약품, 태양에너지, 초고속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NT를 활용한 성과가 속속 이어지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2025년까지 추진할 제4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안도 마련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미래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한계 극복 기술로 NT 개발과 산업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아직 국내 나노 산업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부에서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초기 10년 동안에만 2조3700억여원을 투입해 NT 인프라를 구축하고 R&D를 지원했지만 상용화 성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의 관심은 오히려 점점 줄어드는 분위기다. NT 관련 예산은 10년 전인 2007년에 2700억원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NT 관련 현황 자료 조사도 오래전에 멈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부 기관은 지난해부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운영비를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해당 기관은 외부 수탁 과제를 따내거나 건물 임대료 수입으로 버티는 등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 기관은 특정 기술의 R&D를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아니다. 설립 목적도 기업 지원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출연금을 쥐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창업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주기를 바라다 보니 역할이 자체 R&D보다는 기업 지원과 인력 양성에 치우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부터 역할 설정이 허술한 것으로 보인다.

NT는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산업 흐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인식되는 과학 기술이다. 파인먼이 제창한 지 40년 만에 개발이 본격 시작됐고, 약 60년이 지나서야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 않은 기술이다. 기초 기술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중점 추진하기로 한 4차 산업혁명 구현에도 없어서는 안되는 기술이다. 그럼에도 최근 발표한 국정 과제에는 NT 육성을 직접 언급한 내용은 없는 것같아 아쉽다.

최근 나노종합기술원을 비롯한 나노 관련 인프라 기관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변화 모색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 이 참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NT 관련 인프라를 모아 국가 차원에서 NT 육성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방안도 모색해 보기 바란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